실물 자산의 블록체인 전환, 즉 토큰화(real-world asset, RWA)가 전통 금융을 대체할 다음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업계의 선택이 블록체인의 본질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앙화된 방식으로 실물 자산을 관리하려는 흐름이 오히려 기존 금융 시스템을 반복할 수 있다는 우려다.
RWA 시장에는 이미 블랙록과 그레이스케일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적극 들어서고 있다. 이들 기관은 부동산, 채권, 원자재 같은 실물 자산을 토큰으로 만들어 거래 효율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허용형(permissioned) 블록체인이나 중앙집중형 레이어2 솔루션, 폐쇄형 네트워크를 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거래 참여를 제한하고 자산의 통제를 소수 운영자에게 집중시키는 구조로, 본래 블록체인이 약속한 ‘탈중앙화’와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블록체인 인프라 기업 Taiko의 최고운영책임자(COO) 호아킨 멘데스는 최근 기고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과거에는 금과 곡물을 맞바꾸듯 거래 당사자 간에 직접 가치를 설정하고 합의했다"며, "오늘날에는 은행, 브로커, 수탁기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면서 거래 통제권이 중개인에게 다시 돌아갔다"고 언급했다.
중앙화된 RWA 거래 구조 또한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부동산을 1만 개 조각으로 나눠 토큰화하더라도, 그 토큰이 허용형 블록체인에서만 승인받은 사용자들에 의해 거래된다면 핵심은 ‘중개인이 누군가’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제3자가 거래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다. 멘데스는 “이제 중개인은 단지 온체인에 존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업계가 이런 방식을 택하는 배경에는 규제 준수에 대한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당국은 고객신원확인(KYC), 거래 모니터링, 자산 동결 등 중앙집중형 통제권을 요구한다. 이에 많은 기업들이 전통 금융처럼 단일 운영자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구조를 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선택이 결과적으로 ‘규제 리스크’를 더 키운다는 점이다. 멘데스는 “중앙화된 체인은 규제상 ‘중개인’으로 간주될 수 있어, 자산보관 의무나 면허 취득 같은 추가적인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며, “규제가 기술보다 앞서 있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법적 책임이나 운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퍼블릭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한 롤업 솔루션이 제시된다. 이더리움 기반 롤업은 보안성과 중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비스 단에서 컴플라이언스를 구현할 수 있는 구조다. 멘데스는 “퍼블릭 롤업은 이더리움의 보안을 계승하고, 참여자가 검증 없이도 접속할 수 있어 탈중앙성과 규제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롤업에선 거래 순서 설정 등 핵심 기능을 이더리움 검증인이 수행하기 때문에 단일 운영자의 실패나 검열 위험도 줄어든다. 자산 통제권이 특정 플랫폼이 아닌 전체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함으로써, 규제 준수와 시스템 분산이 상충하지 않는 구조를 만든다는 설명이다.
RWA 시장은 2030년경까지 수조 달러(수천 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지금의 인프라 선택이 향후 수십 년의 디지털 자산 질서를 결정할 수 있다는 평가다. 감시성과 참여 제한이 강화된 구조로 갈 경우, 블록체인은 단지 전통 금융의 ‘장부만 바꾼’ 형태로 머무를 수 있다.
결국, 탈중앙화의 정신을 보존하면서도 규제 요구를 충족하려면 이더리움과 같은 퍼블릭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구조가 필수라는 것이다. 멘데스는 “탈중앙 기술은 이미 존재하며, 새로운 중개인을 만들 필요는 없다”며, “전통 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반복하지 말고, 진짜 분산형 금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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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WA(실물 자산 토큰화)는 전통 금융을 뒤흔들 차세대 기술이지만, 최근 시장은 ‘허용형 블록체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중앙화의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규제를 명분으로 한 이 구조는 또 다른 중개인, 또 다른 의존성을 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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