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AI가 법정서 직접 발언…美 감정 진술의 새 장 열다

| 김민준 기자

미국 애리조나주 법정에서 인공지능(AI)이 사망한 피해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감정 진술을 전달하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이번 사건은 미국 내에서 처음 시도된 사례로, 법정 절차에서 AI 활용이 가진 가능성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윤리적 논란을 동시에 조명하고 있다.

2021년 애리조나주 챈들러에서 분노 운전 사건으로 숨진 크리스토퍼 펠키는 37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지난주 열린 가해자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그의 가족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약 4분간의 디지털 복원 영상 속에서 펠키가 직접 범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피해자 본인의 음성과 얼굴, 몸통까지 재현된 이 영상은 한 장의 사진과 PTSD 관련 유튜브 영상의 오디오 자료만으로 제작됐다.

영상 속에서 그는 “나는 크리스 펠키의 AI 복제 버전이며, 내 사진과 목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힌 후, “그날의 만남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만약 다른 상황에서 마주쳤다면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용서와 신을 믿어왔다”는 말로 용서를 강조했다. 이 대본은 펠키의 여동생이 작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따뜻한 온기를 더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도가 법정 내 감정적인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AI 기술의 법적 활용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본다. 브루클린 로스쿨의 신시아 갓소 교수는 “영상이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으며, 조작 가능성이 있는 AI 콘텐츠의 법정 사용은 매우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워털루대의 모라 그로스먼 교수는 “해당 영상이 배심원이 아닌 판사 앞에서 상영됐고, 증거로 채택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법적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바라봤다.

법조계 전반에서도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 중이다. 미국 대형 로펌 모건앤모건은 AI가 잘못 생성한 판례를 인용해 논란이 된 이후, 변호사들에 대한 내부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뉴욕에서는 피고인이 자신의 주장을 담은 AI 아바타 영상을 제출했다가 재판부의 반발을 산 사례도 있다. 한편 애리조나 주 대법원은 지난 3월부터 AI 음성 스피커를 통해 판결 요지나 사건 결과 등을 전달하는 등 AI 도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번 펠키 사건은 AI 기술이 감정 진술이라는 인류 감성의 영역까지 진입한 상징적 계기로 해석된다. 다만 사법 시스템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향후 체계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AI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윤리적 경계와 법적 제도 사이의 균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