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기업 이름에 단순히 ‘.com’을 덧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솟구치던 일이 있었다. 고객도, 수익도, 명확한 비즈니스 모델도 없이 말이다. 지금 인공지능(AI) 산업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이와 무척 닮아 있다. ‘.ai’ 도메인 등록이 폭증하고 AI 중심의 마케팅 문구가 쏟아지지만, 실제 기술력과 수익 기반이 따라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도메인 통계 전문 사이트 도메인네임스탯(Domain Name Stat)에 따르면, 2024년‘.ai’ 도메인 등록은 전년 대비 약 77.1% 증가했다. 이는 스타트업뿐 아니라 기존 대기업까지 AI 연관성을 강조하려는 시도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닷컴 붕괴가 보여줬듯, 신기술 자체는 장기적 성공의 보증 수표가 될 수 없다. 당시 살아남은 기업은 유행을 좇기보다 실제 문제를 해결하고 확장 전략을 갖춘 사례였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AI 제품’이라 홍보하는 대신, 작게 시작해서 뚜렷한 고객 니즈를 해결하고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닷컴시대의 대표적 성공 사례는 이베이였다. 이베이는 초기 특정 수집가 시장을 공략했다. 펩시 사탕 디스펜서를 거래하는 소규모 경매 플랫폼에서 출발해, 이후 시장 수요에 따라 카테고리를 확장했다. 반면 온라인 장보기 플랫폼 웹밴(Webvan)은 거대한 물류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다 수요를 확보하지 못하고 실패한 대표적 사례다. 이 두 기업의 차이는 ‘집중’과 ‘확장 시점’이었다.
현재 AI 산업에서는 ‘모두에게 다 되는 AI 솔루션’보다는 특정 사용자군을 겨냥한 좁고 깊은 제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SQL에 서툰 제품 매니저(PM)가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도구라면 단단한 고객군을 형성하고, 이후 디자인∙마케팅 등 인접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다. 이는 단기 수익보다 명확한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진 AI 제품이 장기 생존에 유리하다는 교훈과 맥을 같이한다.
이어지는 성공 전략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 닷컴 붐 속에서도 살아남은 아마존은 단순한 도서 판매상이 아니었다. 아마존은 고객이 클릭하고 구입한 기록을 분석해 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고, 지역별 주문 패턴으로 물류 효율을 높였다. 이처럼 고객의 반복 행동에서 나온 데이터가 복합적인 경쟁력을 형성했다.
구글 역시 사용자의 검색 질의와 정정 데이터를 지속 반영해 검색 품질을 강화했고, 이는 광고 플랫폼의 정밀도로 이어졌다. 핵심은 AI 모델 자체가 아니라, 그 모델을 꾸준히 ‘학습시키는 데이터 루프’에 있다.
이 점에서 생성형 AI 기업들도 이제부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사용자의 어떤 데이터를 사용자 경험 향상에 활용할 수 있는가. 그 데이터를 어떻게 반복학습 구조로 연결할 것인가. is 특히 경쟁사가 확보할 수 없는 고유한 도메인 자료를 축적할 수 있는가.
듀오링고(Duolingo)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GPT-4 기반 AI 대화 기능은 단순 답안 제공을 넘어, 학습자의 사고 과정과 언어 사용 패턴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듀오링고는 AI 기반 서비스에 독자적 학습 데이터를 결합해 경쟁우위를 강화하고 있다.
AI 열풍은 기술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 닷컴 거품도 사라졌고, 언젠가 AI도 유사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살아남는 기업은 뛰어난 모델 성능이 아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제품을 구축한 곳일 것이다. 요란한 시작보다 신중한 첫걸음,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고 미래를 여는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