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가 자체 구축한 AI 플랫폼 ‘엘리먼트(Element)’를 통해 엔터프라이즈 AI 개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처럼 외부 솔루션을 구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에서 필요한 기능을 직접 만들고 대규모로 배포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글로벌 리테일 산업 내에서 독자적인 혁신 역량을 입증했다. 현재 150만 명의 직원들이 엘리먼트를 기반으로 한 AI 툴을 사용 중이며, 이는 전통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수준의 속도와 효율성을 자랑한다.
엘리먼트는 하루 300만 건의 쿼리, 주간 기준으로는 90만 명의 사용자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로 운영되며, 실시간 번역만 해도 44개 언어를 지원한다. 특히 근무 교대 계획 수립 시간을 90분에서 30분으로 단축시키는 등 현업의 효율 개선에 직결되는 효과가 두드러진다. 월마트 기술 부문 수석 부사장 파르베즈 무사니(Parvez Musani)는 인터뷰에서 “엘리먼트는 특정 생성형 AI 모델(LLM)에 종속되지 않고 비용이나 정확도 측면에서 최적의 모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AI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외부 벤더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이같은 플랫폼 전략의 핵심은 단순한 앱 개발이 아닌 ‘제조’ 방식에 있다. 엘리먼트는 같은 인프라 상에서 다양한 AI 애플리케이션을 생산, 표준화된 개발과 품질 관리를 통해 일관된 사용 환경을 보장한다. 현재 운영 중인 대표적 AI 앱들은 작업 일정 관리, 실시간 번역, 대화형 AI, 증강현실 기반 재고 관리, 사내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특히 작업 일정 관리 앱만 보더라도 매니저당 하루 60분의 업무 시간을 절약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매장 기준으로 수백억 원 이상의 인건비 절감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엘리먼트가 타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구조적 통합에도 있다. 유통 흐름, 고객 행동, 점포 운영 데이터가 하나의 프로세스로 연결돼 있고, 이를 통해 개발 중인 애플리케이션들은 공급망 상태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거나 지역별 데이터를 반영한 자동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각 매장에서 생성되는 독립적인 데이터 패턴이 오히려 애플리케이션의 적응성과 정교함을 높이는 자원이 되는 셈이다.
AI 모델 선택에 있어서도 월마트는 기존과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단일 모델을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성능 및 비용 평가 기반으로 플랫폼이 최적의 모델로 자동 전환한다. 44개 언어를 다루는 번역 도구의 경우, 언어쌍별 모델 특성을 따져 선택하고 있으며, 이러한 유연성은 개발 속도뿐 아니라 운영 비용 절감에도 크게 기여한다.
무엇보다 이 같은 시스템은 사용자 피드백을 지속적인 개선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매일 3만 건 이상의 대화형 AI 쿼리와 매장 직원들의 사용 경험이 플랫폼 내부에 축적되고, 이는 다음 앱 개발 시 정확도와 사용자 만족도를 높이는 데 활용된다. 데이터 과학자나 엔지니어는 요구사항만 제시하면 엘리먼트가 적합한 모델을 연결하고, 배포를 자동화하는 구조다.
월마트는 이러한 데이터 중심의 플랫폼 전략으로 인해 타 기업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AI 도입을 확산시키고 있다. 기업 내수요가 발생하면 곧바로 개발이 착수되고, 수개월이 걸리던 배포 주기를 수주로 단축시켰다. 외부 플랫폼이 다양한 업종에 맞춰 범용성을 추구하는 데 비해, 엘리먼트는 월마트만의 용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맞춤형 설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크다.
시장 경쟁 측면에서는 단순한 기능 차원을 넘어 구조적 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나의 앱이 플랫폼을 강화시키고, 또 다른 앱의 개발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디지털 전환과 AI 자동화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월마트처럼 AI를 핵심 경쟁 자산으로 삼고 자체 능력을 빠르게 축적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도 확실한 격차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월마트는 엘리먼트를 통해 AI를 ‘설치하는 도구’가 아닌, ‘조직 내 제조 가능한 역량’으로 재정의했다. 이 플랫폼은 선택과 조합의 유연성을 철저히 갖춘 LL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며, 사내 피드백 루프, 통합 데이터 시스템, 자동화된 배포 인프라 등 선행 기업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통합적 사고방식을 구현했다. 이는 업계 전반에 “AI를 사서 쓰는 시대는 끝났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작용하고 있다. AI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모두 체감한 글로벌 기업들이, 이제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월마트는 그 정답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