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마트, AI로 매장 혁신… '문제해결' 중심 전략에 업계 주목

| 김민준 기자

월마트가 수천 개의 AI 활용 사례를 아우르는 엔터프라이즈급 인공지능 배치 전략을 공개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회사는 AI 신뢰성을 단순한 준수 항목이 아니라 핵심 엔지니어링 기준으로 여기는 독특한 접근 방식으로, 2억 5,500만 명 이상의 주간 고객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월마트의 신흥 기술 부문 부사장 데지레 고스비는 최근 열린 'VB 트랜스폼 2025' 행사에서 “우리는 지금 인터넷 도입기와 유사한 AI 도약 시점에 서 있다”며, “AI가 우리의 모든 업무 방식과 운영 체계를 바꾸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단일 플랫폼이 아닌 조직 내 이해관계자집단별 맞춤형 AI 도구를 구성하는 방식을 소개하며, 고객·판매사원·머천다이저·협력사·개발자 각각의 요구에 최적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고객은 자연어 기반 쇼핑 도우미 ‘스파키’를 활용하고, 현장 직원은 재고 및 워크플로우 최적화 도구를 받는다. 머천다이저는 카테고리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협력사는 이커머스 통합 툴을 사용하는 식이다. 고스비는 “현장에서 실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AI는 결코 채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AI 배치 전략의 핵심은 ‘신뢰 경제’에 있다. 교육이나 지침보다 실질적인 가치 제공이 더 효과적으로 신뢰를 형성한다는 설명이다. 고스비는 팬데믹 기간 비대면 배송으로 이동한 자신의 어머니 사례를 언급하며, “불편 없이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제공한 것이 곧 AI 채택의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이 느끼는 직접적인 혜택이 AI에 대한 신뢰와 지속적 사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월마트의 실시간 수요 반영 시스템 ‘트렌드 투 프로덕트’도 주목할 만하다. 이 도구는 소셜미디어 반응, 고객 행동, 지역별 소비 트렌드 등을 분석해, 제품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몇 달에서 몇 주로 단축시켰다. 그 결과 재고 회전율은 증가하고, 과잉 재고로 인한 가격 인하 부담은 줄어들었으며, 자본 효율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AI 에이전트를 유기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이라는 표준화 전략을 통해 기존 시스템을 재활용하고 있다. 월마트는 단일 시스템 교체가 아닌, 기존 인프라를 분해해 새로운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확장성과 유연성을 확보했다.

또한, 월마트는 수십 년간 쌓은 인력의 전문지식을 데이터 자산으로 변환 중이다. 각 부서의 전문화된 상식과 암묵지는 AI 시스템에 구조화되어 저장되며, 이를 통해 한 단계 더 고도화된 고객 경험을 실현하고 있다. 고스비는 “내부에는 치즈 전문 매니저처럼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직원이 수천 명 있다. 이들의 지식을 AI가 구체적 추천 기능으로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마트는 기존 마케팅과 운영 지표로는 측정할 수 없는 AI 성과에 맞는 새로운 평가 체계도 정립 중이다. 예를 들어, 단순 전환율보다 고객이 문제를 해결했는지 여부를 핵심 성과지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고객 가치 실현 여부가 곧 AI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월마트의 철학을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월마트의 AI 전략이 소매 산업을 넘어, 복잡한 이해관계자가 얽힌 헬스케어·금융·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블루프린트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스비는 “신기술을 채택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고객과 직원이 실제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4,700개 매장에서 매일 수백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하는 월마트는 체계적인 배포 전략과 명확한 목표 하에 AI를 기업의 각 부문에 자연스럽게 융합하고 있다. AI를 도입하되, 기술 자체보다는 ‘문제 해결’이라는 인간 중심 가치에 집중하는 점이 이들의 전략 핵심이다. 월마트의 사례는 아직 파일럿 단계에 머무른 많은 기업에게 실질적인 AI 전환의 힌트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