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프라이즈 현장에서 인공지능(AI)은 더이상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다. 이제 AI는 실제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며 기업의 핵심 파트너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열린 VB 트랜스폼 2025 콘퍼런스에서는 앤트로픽(Anthropic)의 제품 책임자 스콧 화이트가 AI 에이전트의 진화를 생생한 사례로 보여줬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AI는 코드 한 줄 완성조차 버거워했지만, 이제 그는 전문 코딩 지식 없이도 자체 프로그램 생산이 가능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화이트는 자신의 역할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제품 기획서를 작성한 후 협업자들에게 실행을 설득해야 했지만, 이제는 직접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시연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AI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넘어, 전통적인 업무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Claude)’ 시리즈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변화를 이끌었다. 초기 모델은 기본적인 문장 완성 기능에 머물렀으나, 클로드 3.5 소넷 출시 후에는 전체 애플리케이션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이어 클로드 4는 SWE-bench 기준 72.5%의 코드 문제 해결률을 기록하며, "완전한 원격 AI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 출시된 클로드 코드(Claude Code)는 코드 분석과 인터넷 검색, API 문서 탐색, 풀 리퀘스트 생성, 리뷰 대응까지 모두 수행하며, 코드 작성과 개선 과정 전반을 AI가 자체적으로 조율한다. 화이트는 이 도구의 90% 이상이 AI 자체에 의해 작성됐다고 밝혔다. 불과 반년 만에 가능해진 일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속도는 놀라울 따름이다.
한편, 이러한 기술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제약, 금융, 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는 기존에 10주 걸리던 임상 보고서를 10분 만에 완성하게 됐고, 깃랩(GitLab)과 인튜이트(Intuit)도 세일즈 제안부터 세무 자문까지 폭넓게 활용 중이다.
화이트는 AI 시스템을 크게 네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단편적인 질문에 답변하는 언어모델, 웹 검색 등 도구가 추가된 모델, 업무 프로세스를 통합한 구조화 모델, 마지막으로 목표 기반으로 복잡한 과제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트형 AI다. 그는 “에이전트는 목표를 향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AI 인프라까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앤트로픽이 개발한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은 기업 내부 데이터와 클라우드 툴을 연결하는 표준 인터페이스로, 필요 시 누구나 쉽게 자체 AI 시스템을 기존 시스템에 접속시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화이트는 이 표준화가 “데이터 접근을 민주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AI 에이전트 도입을 고민하는 기업에 대해 그는 ‘작게 시작하고 점진적으로 확장하라’고 조언했다. 전체 시스템을 한 번에 구축하기보다는 단일 기능부터 실험하고, 기능이 안정화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AI 성능을 측정하는 ‘평가 시스템’ 구축이 필수라며 “이제 PRD를 대체할 개념은 Evals다”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화이트가 내다보는 미래는 더욱 다층적이다. 기술적 배경이 없는 일반 직원조차 AI를 직접 활용해 업무 구조를 설계하고, 심지어는 ‘AI 조직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누구나 소규모 제품 총괄(CPO)이나 CEO처럼 AI 조직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것이 자신이 매일 상상하고 도전하고 싶은 미래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AI가 보조 역할을 넘어서 독립적인 동료로 진화함에 따라, 기업이 업무를 정의하고 추진하는 방식 전반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AI 도입 자체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이며, 업무의 근간을 ‘AI와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프레임 안에서 다시 써가는 여정의 시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