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소프트웨어 개발자 수가 5천만 명 미만에 그치는 가운데, 스위스에 본사를 둔 비영리 단체 디피니티(Dfinity)는 이 수치를 50억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들은 최근 자연어 기반 인공지능 ‘카페인 AI(Caffeine AI)’의 알파 버전을 선보이며, ‘셀프 라이팅 인터넷(Self-Writing Internet)’이라는 개념을 본격화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몇 분 안에 AI 앱을 작성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선언이다.
디피니티의 창립자이자 최고과학자인 도미닉 윌리엄스(Dominic Williams)는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Hello, Self-Writing Internet’ 발표회를 통해 “5억 명이 아니라 50억 명의 개발자가 가능하다”며, 앱 개발의 문턱을 사실상 제거할 수 있는 변곡점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사용자가 자연어로 대화하듯 명령하면 실시간으로 애플리케이션이 생성되고 수정되는 구조로, 완전한 형태의 사용자 블로그나 온라인 쇼핑몰이 무대 위에서 단 몇 분 만에 구현되기도 했다.
카페인은 블록체인 기반 '인터넷 컴퓨터 프로토콜(ICP)' 위에 구축됐으며, AI 명령 처리 과정과 결과물이 모두 블록체인 상에서 작동해 탈중앙화와 검증 가능성을 확보했다. 아울러 디피니티는 이 플랫폼의 엔터프라이즈 진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암호화폐의 신뢰도 하락이 부담 요소로 지적되지만, 윌리엄스는 “카페인은 토큰이 아닌 실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드를 대화로 쓰고, 앱을 대화로 진화시키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러한 속도와 효율성은 기업들도 외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비전은 앱 생태계의 지형에도 직접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카페인은 자체 앱 마켓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기본 앱을 복제해 수정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지원한다. 전통적인 앱스토어 시장이 '구매' 중심에서 '복제 및 커스터마이징' 중심으로 옮겨가는 변화가 예고되는 셈이다. 디피니티의 최고사업책임자(CBO) 피에르 사마티에스(Pierre Samaties)는 “기존 앱스토어는 본질적으로 문지기 역할에 머물러 있다”며 “이 구조는 점차 해체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는 세계적인 AI 기업 앤스로픽(Anthropic)이 디피니티와 손잡고 백엔드 구현에 ‘클로드 소넷(Claude Sonnet)’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클로드 3.7 소넷은 헌법형 AI 원칙을 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 중심의 AI 결정을 보장하는 데 기여하는 모델이다. 앤스로픽의 윌리엄 스트란즐(William Stranzl)은 “AI가 인간의 동료처럼 행동하도록 설계된 원칙이 이 모델에 내재되어 있다”며 “이를 통해 사용자와의 인터페이스가 진정한 상호작용으로 진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디피니티의 카페인은 단순한 앱 개발 도구를 넘어, 웹의 미래에 대한 철학적 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모든 웹사이트를 실시간 마이크로서비스화하는 방식으로, 웹3과 AI 기술의 접점을 재정의한다는 포부다. 윌리엄스는 “기존의 웹이 정적인 페이지들의 모음이었다면, 앞으로의 웹은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반응하는 유기체가 될 것”이라며 웹의 구조적 혁신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결국 디피니티의 카페인은 개발자 지형을 바꾸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AI 주도의 사용자 중심 웹 구축이라는 다층적 도전에 나선 셈이다. 이는 대형 언어모델 기업 중심으로 확장되는 AI 생태계와 맞물리며, 소프트웨어 업계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