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포스 AI, 100만건 상담 돌파…‘공감하는 에이전트’로 진화

| 김민준 기자

세일즈포스(CRM)가 자사 AI 고객지원 에이전트 '에이전트포스(Agentforce)'를 통해 100만 건 이상의 자동 상담을 처리하며 엔터프라이즈 AI 분야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milestone은 AI 도입에 따른 기대 성과뿐 아니라, 인간 중심 설계에 대한 교훈까지 던져준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작년 10월 자체 헬프 포털을 통해 에이전트포스를 공식 출시한 이후 9개월 만에 주간 평균 4만5,000건의 고객 문의를 AI 에이전트가 단독으로 응대할 수 있게 됐다. 현재 AI가 단독 해결하는 고객문의 비율은 전체의 84%에 달하며, 전체 고객지원 요청 규모를 5% 줄이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약 500명의 지원 인력이 업무 조정되며 가치 중심적인 역할로 재배치됐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변화는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다. 세일즈포스는 스스로를 ‘고객 0번(Customer Zero)’으로 정의하고, 자사 AI 에이전트를 실제 서비스에 직접 적용하며 얻은 현장 데이터에서 탁월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126건의 대화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AI 처리량을 늘려가는 단계적 배포 전략을 통해 예기치 못한 문제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었다는 점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에이전트포스의 핵심은 기존 챗봇과의 차별성이다. 단순한 결정 트리나 형태적인 응답이 아니라, 세일즈포스의 방대한 데이터 클라우드(총 74만 개의 고객 지원 문서)를 기반으로 다양한 언어와 제품군의 정보를 실시간 연산해 적용한다. 이에 따라 고객이 질문한 거의 모든 세일즈포스 제품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흥미로운 변화는 공감 능력에서 비롯됐다. 초기에는 정확한 정보 제공만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나, 고객들이 차가운 응답에 심리적 거리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세일즈포스는 기존 인간 상담사가 받은 소프트 스킬 교육인 '서비스의 기술'을 에이전트포스에도 통합했다. 이 결과, 고객이 장애를 호소할 경우 AI가 먼저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공감 표현을 하고, 이후 적절한 프로세스를 안내하는 설계로 바뀌었다.

이 같은 접근은 고객 만족도 지표에 즉각적인 긍정 효과를 불러왔다. 특히 처음엔 자랑거리로 여겨졌던 AI 문의의 인간 상담 전환율(핸드오프 비율) 1%가, 오히려 고객 불만의 원인이었다는 점도 뒤늦게 확인됐다. 지나치게 상담사를 회피하려는 설계가 오히려 경험 품질을 떨어뜨렸던 셈이다. 이에 세일즈포스는 이를 5% 선으로 조정했고, AI와 사람이 혼합된 상담 방식이 전반적인 만족도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AI가 참조하는 문서 중 중복되거나 오류가 있는 콘텐츠가 많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른바 ‘콘텐츠 충돌(content collision)’ 문제가 발생하면서 AI는 어떤 정보를 우선 적용할지 판단하지 못해 혼선을 빚은 것이다. 세일즈포스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수천 개의 문서를 삭제하거나 통합하는 ‘콘텐츠 위생 관리’ 프로젝트를 단행하며, AI의 정확도 향상에 박차를 가했다.

이외에도 지나친 AI 규제가 오히려 성능 저하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처음엔 마이크로소프트(MSFT) 등 경쟁업체와 관련된 모든 질의를 차단했지만, 이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와의 통합과 같은 정당한 질문에도 AI가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세일즈포스는 ‘세일즈포스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라’라는 단일 지침으로 바꾸면서 유연성을 확보했다.

세일즈포스는 향후 음성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AI 상담의 주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전용 음성 지원 앱을 개발 중이며, 연내 드림포스(Dreamforce) 행사에서 시연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다국어 지원도 강화해 이미 일본어에서 87% 상담 해결률을 달성한 데 이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의 언어도 도입할 예정이다.

이번 100만 회 상담 돌파 사례는 엔터프라이즈 AI 도입을 고민하는 기업들에 네 가지 핵심 교훈을 남긴다. 첫째, 소수 고객군을 대상으로 한 점진적 확장 전략이 필수다. 둘째, 데이터 품질 관리 없이는 어떤 AI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셋째, 과거 조직 구조에 새로운 AI 역량을 무리하게 끼워 맞추는 것은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넷째, ‘정확도’ 외에도 ‘공감’, ‘적절한 이관’, ‘종합 만족도’ 등 새로운 지표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제 AI가 인간 지원 인력을 넘어선 상황에서, 세일즈포스는 “성능 상회 이후 어떤 기준을 갖고 평가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상담 효율화를 넘어 서비스 자체의 정의를 새롭게 쓰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2027년까지 전 세계 생성형 AI에 대한 기업 투자가 1,430억 달러(약 205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으며, 딜로이트는 같은 해 1,500억 달러(약 216조 원)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같은 급성장 예측 속에서, 세일즈포스가 만들어낸 실제 성과와 시행착오는 향후 기업들이 AI 전환 과정을 보다 현실적으로 설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