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타트업 간 인수합병(M&A)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IPO 시장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통적인 자금 조달이나 엑시트 기회가 여전히 제한적인 점과, 인공지능(AI) 분야의 경쟁 심화가 맞물리면서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폈다. 특히 글로벌 M&A 건수가 전년 대비 18% 증가하며 창업 기업들 사이에서 '기술 확보'를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 확연히 늘어난 모습이다.
크런치베이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전 세계적으로 427건의 스타트업 간 M&A가 보고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기록한 362건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로, 더 이상 M&A는 대기업이나 유니콘 기업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AI 기술 확보를 위한 매입이 잇따르며 기술 내재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핵심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은행 머프슨 하우 헌터(Mufson Howe Hunter)의 매니징 파트너 마이클 머프슨은 “투자 유치가 어려워지고 있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창업자들의 전략이 점점 더 창의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개의 초기 스타트업이 통합되면 스토리라인이 탄탄해지고, 고객 기반 확대나 기술력 보강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AI 관련 역량이 부족한 스타트업은 관련 인력을 빠르게 내재화하기 위해 AI 기술을 보유한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 기반의 스타트업 자문사 사기 캐피털 어드바이저스(Sagie Capital Advisors)의 창립자 잇타이 사기 역시 자금 조달 여건 악화가 M&A 증가의 핵심 배경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벼랑 끝에 몰린다 해도 기존 투자 라운드를 연장하는 것보다는 기술·고객·인재 측면에서 보완 가능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게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특히 실현 가능한 ARR(연간 반복 매출) 배수를 바탕으로 M&A가 보다 합리적인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해 다수의 굵직한 거래도 성사됐다. 대표적으로 오픈AI(OpenAI)가 전 애플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설립한 하드웨어 스타트업 Io를 약 6.5억 달러(약 9,360억 원)에 인수했으며, 한때 3억 달러 규모로 추진됐던 AI 코딩툴 윈드서프 인수는 무산됐지만, 이후 구글(GOOGL)이 관련 기술 라이선싱에 24억 달러(약 3조 4,560억 원)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조정됐다.
지속 가능성과 실적 지표가 안정적인 대형 스타트업이 시장에 인수 주체로 부상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고평가된 유니콘보다 훨씬 견고한 자산 기반과 자금 운용 능력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피인수 대상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리플(Ripple)이 프라임 브로커리지 플랫폼 히든로드를 12.5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에 인수했으며, 데이터브릭스(Databricks)는 약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 거래를 통해 데이터베이스 업체 네온을 인수해 내부 생태계 개선에 나섰다.
거래 성격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SSM 로펌의 린지 미냐노 공동대표는 최근 실리콘밸리 내에서는 핵심 기술(IP)과 핵심 인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자산 인수+어커하이어(acqui-hire)’ 방식이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방식은 고액 인력을 별도 채용하는 것보다 빠르고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는 점에서 AI 분야 등에서 특히 매력적인 전략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렌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점점 치열해지는 AI 시장, 보수적으로 변화한 벤처 투자 시장, 그리고 엑시트를 둘러싼 구조적 한계가 복합 작용하면서 스타트업 간 M&A는 기술 내재화뿐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서도 핵심 경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