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이제 더 이상 가상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엔비디아(NVDA)는 최근 열린 산업 브리핑을 통해 실제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AI(Physical AI)'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젠슨 황(Jensen Huang) CEO는 올해 대부분의 연설에서 물리적 AI를 차세대 핵심 기술로 규정하며, 언젠가는 잔디깎이부터 지게차, 자동차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이 자율화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물리적 AI는 단순한 로봇 개념을 넘어, 스마트 센서를 기반으로 실제 환경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광범위한 기술 생태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는 자율 휠체어가 환자를 직접 병실에서 로비까지 이동시키고,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라운지에서는 로봇이 고객의 식기류를 수거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및 시뮬레이션 기술 부문 부사장인 레브 레바레디언(Rev Lebaredian)은 물리적 AI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며, "대규모 언어 모델이 텍스트 입력을 해석하고 응답을 생성하는 것처럼, 물리적 AI는 로봇이 감지하는 현실 환경의 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행동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로봇팔은 모터 출력 조절을 통해 물체를 조작할 수 있고, 자율주행차는 조향, 가속, 제동을 동시에 수행한다.
이러한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여전히 숙련 노동자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 물류업계는 현재 3만 5,000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며, 주요 기업 중 하나인 아마존조차 연간 이직률이 150%를 넘는다. 특히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노동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성과 소비재 물류 대응은 물리적 AI의 주요 수혜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전환점에 도달했다. 레바레디언은 "물리적인 로봇을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문제는 '지능'이었다. 이제는 다양한 물리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범용 AI 알고리즘을 설계할 청사진이 처음으로 확보됐다"고 밝혔다. 인간 수준의 제어 능력을 갖춘 '두뇌'를 만들고 이를 다양한 산업에 접목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산업용 로봇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지만,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컴퓨팅 인프라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회사는 특히 시뮬레이션용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와 코스모스(Cosmos), AI 모델 학습용 DGX 및 HGX, 그리고 실제 운영을 담당할 차세대 엣지 컴퓨터 젯슨 토르 AGX(Jetson Thor AGX) 등 세 가지 핵심 컴퓨팅 플랫폼을 통해 물리적 AI 구현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컴퓨터는 모두 자사의 신규 GPU 아키텍처 블랙웰(Blackwell)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고성능 하드웨어만으로 완전한 AI 솔루션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레바레디언은 “진정한 AI 개발에는 대규모 고정밀 학습 데이터가 필요한데, 이를 현실 환경에서 센서를 통해 수집하는 것은 비용, 위험성, 접근성 측면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엔비디아는 'AI 공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먼저 물리 법칙에 기반한 가상 시뮬레이터를 설계하고, 이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로 AI 모델을 훈련시킨 뒤 해당 모델을 실제 시스템에 이식하는 구조다.
시뮬레이션은 단지 데이터를 생성하기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훈련된 AI를 실제 물리 환경에 적용하기 전에 수백만 시간의 테스트를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검증 도구이기도 하다. 이는 실제 환경을 재현하지 않아도 다양한 변수 하에서 로봇의 행동을 예측하고 검증할 수 있게 해준다. 물리적 테스트 대신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비용은 줄이고 안전성은 높이는 동시에 알고리즘 품질도 보장할 수 있다.
레바레디언은 "엔비디아가 기계의 두뇌를 만들기 위한 기초 컴퓨팅과 알고리즘을 제공하지만, 물리적 AI의 완성은 생태계 전체의 협업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응용계층, 산업별 적용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과 기관이 협력해야만 물리적 AI가 100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AI 산업의 관심이 생성형 AI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그것을 기반으로 실세계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물리적 AI가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 곧 우리가 사용하는 진공청소기, 잔디깎이, 골프카트뿐 아니라 산업 현장의 물류 시스템까지 자율화된 디바이스로 대체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전망이 점점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