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는 잊어라… 이제는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EGI 시대

| 김민준 기자

인공지능의 발전을 향한 담론에서 ‘인간 수준의 지능’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범용 인공지능(AGI)은 꾸준히 중심에 자리해 왔다. 그러나 최근 실리콘밸리 내에서는 AGI보다 기업용 범용지능, 즉 EGI(Enterprise General Intelligence)에 더 큰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AGI가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논의에 묶여 있는 반면, EGI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빠르게 실현 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 리더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반 AI 모델들은 언어 예측 능력에 집중되어 있어, 인간의 개입 없이는 기업 시스템의 복잡한 결정까지는 스스로 처리하지 못한다. 하지만 EGI는 여기에 분기점을 만들고 있다. 복잡하지만 구조화된 기업 환경은 인공지능이 목적에 따라 체계적 추론과 의사결정을 반복 학습할 수 있는 최적의 훈련장이 되고 있다. 이같은 시스템은 단순한 텍스트 생성기를 벗어나, 이질적인 시스템 간 데이터를 통합 판단하고 실시간으로 실행할 수 있는 진짜 지능을 구현하는 데 유리하다.

EGI의 핵심은 '에이전틱 AI' 개념이다. 이는 단순 응답이 아닌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실행 및 피드백 반영 능력을 갖춘 지능형 에이전트를 말한다. 예컨대, 공급망에 차질이 생겼을 경우 현재 AI는 분석 결과만 제공하지만, EGI 시스템은 자동으로 납기를 조정하고, 재고 예측과 공급처 계약을 수정한 후 관련 내용을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통지할 수 있다. EGI는 스스로 부족한 기능을 인식하면 외부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직접 생성해 결함을 보완하는 '자기 구성 능력'까지 가진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이미 기업 내에서는 여러 초보적인 시도가 관찰되고 있다. 자율적 고객 지원 에이전트, 업무 보조용 코파일럿은 물론이고 부서 간 협업과 데이터 흐름 최적화를 목표로 한 AI 도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만 완성된 EGI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전략을 주도하고 윤리를 감시하며, 창의적 비전을 설계하는 등 EGI의 방향성과 한계를 명확하게 설정할 ‘판단자’로서 자리하게 된다.

기업용 범용지능이 현실화될 경우, 기존의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더 이상 '도구를 쓰는 사람'이 아닌, '동료처럼 의사결정을 내리는 AI'와 일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전통적인 반응형 소프트웨어는 자가 판단과 실행이 가능한 자율 시스템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고, 이 과정에서 과거 인터넷 혁신 시기처럼 엄청난 시장 재편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AGI에 대한 담론이 여전히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실제 기업의 경쟁력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AI’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건 기술의 철학적 정의가 아니라, 현장에서 체화된 AI의 실행 능력이다. 기업이 받아들여야 할 질문은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보조 수단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파트너로 진화할 것인가’다.

EGI 혁명은 결국 기업의 등 뒤가 아닌, 사무실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연이어 축적되는 수많은 자율적 결정이 인간 개입 없이도 체계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순간, 초지능은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