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고무줄이나 전선처럼 형태가 일정치 않은 물체를 보다 정확하고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8월 21일 개발 사실을 공개한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은 기존 로봇 기술이 풀지 못하던 문제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KAIST 전산학부 박대형 교수 연구팀은 물체의 일부 형태만 파악하더라도 전체 구조를 예측하여 조작할 수 있도록 로봇을 학습시키는 ‘INR-DOM’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통해 로봇은 단순한 외형 인식을 넘어,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전선, 고무줄, 옷감처럼 유연하고 쉽게 변형되는 소재는 기존 로봇에게는 큰 과제였다. 물체의 형태 변화가 불규칙하고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로봇 기술은 주로 정형화된 물체를 기준으로 학습돼 있어, 복잡하고 연속적으로 변하는 형상에 대한 인식 수준이 부족했다. 연구팀은 로봇이 환경에서 수집한 불완전한 3차원 정보를 바탕으로 물체의 전반적인 구조를 추정하고, 그에 맞춰 조작법을 스스로 익히는 방식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요컨대 겉으로는 일부분만 드러난 물체라도, 내부 구조나 숨겨진 곡면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셈이다.
실험 결과, 이 기술의 효과는 상당히 뚜렷했다. 가상 환경에서 로봇이 고무링을 끼우는 작업, 링을 부품에 설치하는 작업, 꼬인 고무줄을 푸는 작업 등 세 가지 시나리오에서 모두 기존 최고 성능의 로봇 기술보다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 특히 꼬인 고무줄을 푸는 과제는 성공률이 무려 75%에 달해, 과거 기술의 26%보다 세 배 가까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환경에서도 평균 90% 이상의 성공률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팀 측은 이번 성과가 로봇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송민석 연구원은 “로봇이 불완전한 정보를 기반으로 물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조업이나 물류, 심지어 외과 진료와 같은 의료 분야까지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인공지능 기반 조작 기술은 향후 산업 현장에 도입되면 자동화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위험하거나 정밀도가 요구되는 작업에서도 인간의 역할을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만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더 많은 실험과 보완이 필요하며, 기술의 검증과 보급 속도가 향후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