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파운데이션 캐피털(Foundation Capital)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겨냥한 독특한 투자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이름 그대로 ‘제로 빌리언달러 마켓(Zero Billion-Dollar Market)’에 먼저 뛰어들어 산업을 선도할 스타트업을 조기에 발굴하고, 시장이 형성되기 전부터 의도적으로 키워나가는 방식을 택한다.
1995년 설립된 파운데이션 캐피털은 지난 3월, 총 6억 달러(약 8,640억 원) 규모의 신규 펀드를 조성하며 이 같은 전략을 더욱 본격화하고 있다. 이 펀드는 제품조차 없는 초기 단계의 기술 기반 창업가들에게 우선 투자하는 데 집중되며, 이후 눈에 띄는 초기 매출을 만들면 곧바로 후속 투자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스타트업이 초기 백만 달러 수준의 수익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위험 구간을 함께 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비전의 중심에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주목하는 스티브 바살로(Steve Vassallo) 파트너가 있다.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 출신인 그는 AI가 진화할수록 인간적인 감각과 심리적 통찰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인간의 피드백이 중심이 되는 강화학습 기반 AI 기술이야말로 기술 진보에 필수적이라고 평가했다. “기계가 빠르게 똑똑해지는 건, 인간이 어디에 취약점이 있는지를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파운데이션은 AI 칩 제조사 세레브라스(Cerebras)와의 협업 경험을 대표 사례로 꼽는다. 해당 기업은 2016년 파운데이션의 인큐베이팅에서 시작됐으며, 이후 벤치마크와 이클립스 벤처스의 공동투자를 받아 본격적인 시장 진입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AI 워크로드가 급증하고 있었지만, 반도체 산업 투자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강했다. 그러나 바살로는 단순 연산 능력보다 데이터 이동을 중심으로 한 아키텍처 전환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포착했다. 현재 세레브라스는 상장을 추진 중이며, 일반 GPU 접근법과 차별화된 기술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파운데이션은 현재까지 인공지능 분야에서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범위는 인프라, 데이터 관리, 보안, 개발 도구, 실사용 애플리케이션까지 광범위하다. 다만 오픈AI(OpenAI)나 앤스로픽(Anthropic) 같은 프런티어 모델 연구소에는 직접 투자하지 않는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AI 작문 툴 ‘재스퍼(Jasper)’를 꼽을 수 있다. 해당 스타트업은 2021년 파운데이션의 시드 투자를 시작으로 가파르게 성장했으며, 이후 오픈AI의 GPT-3.5가 출시되면서 B2C에서 B2B 마케팅 솔루션으로 빠르게 선회하기도 했다. 이밖에 헬스케어 서류 자동화 스타트업 텐너(Tennr)와 AI 코드 분석 툴 코드심(CodeSim)을 개발한 플레이어제로(PlayerZero) 등도 포트폴리오에 포함돼 있다.
AI 코딩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FT) 등 빅테크의 최대 30% 이상 코드를 이미 AI가 작성하고 있는 현재, 오류 파악과 성능 최적화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코드심은 바로 이 ‘닫힌 루프(Closed Loop)’ 구조를 통해 실제 동작을 기준으로 코드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실용적인 AI 활용 사례로 주목된다.
파운데이션은 일반적으로 스타트업 한 곳에 1,500만~2,000만 달러(약 216억~288억 원)를 투자한다. 이는 시리즈 A에서 B 라운드까지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금 범위다. 더불어 ‘리더십 펀드’를 별도 운영해 잠재력이 입증된 기업에는 추가 투자를 이어간다.
현재 파운데이션은 AI 전체 기술 스택과 더불어 암호화폐, 핀테크 영역에서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바살로는 인프라가 선도하고, 애플리케이션이 후속하는 과거 기술주기처럼 AI 역시 이 같은 흐름을 따를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기술의 경계선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기존에 없던 시장을 창출하는 집단으로서의 정체성을 재차 강조했다. AI가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에 파운데이션 캐피털의 투자 전략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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