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광유전학 기술을 접목한 국내 연구진의 융합 연구가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 가능성을 한층 앞당길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허원도·김대수 교수와 기초과학연구원(IBS) 이창준 단장이 이끄는 공동 연구팀은 9월 22일, 인공지능(AI) 기반 행동 분석과 뇌 신경세포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법 개발에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특히 동물 실험을 통해 질병의 초기 행동 지표를 정량화하고, 해당 지표가 파킨슨병에 특이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입증한 데 큰 의의가 있다.
파킨슨병은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점차 사멸하면서 발생하며, 떨림이나 근육 경직, 동작 느림, 보행 이상 같은 운동장애가 대표적 증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땐 이미 신경세포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는 것이다. 기존 진단법으로는 발병 초기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고, 약물치료의 효과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파킨슨병 유전자를 이식한 생쥐를 대상으로 3차원 AI 자세 분석 기술을 적용해 약 340가지 행동 신호를 세밀히 관찰하고 ‘파킨슨 행동지수’라는 정량 지표를 개발했다. 이 지수는 생쥐가 질병을 유도받은 지 2주만 지나도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고, 기존 검진법보다 훨씬 민감하게 파킨슨병의 초기 상태를 포착할 수 있었다. 특히 보폭, 손발 움직임의 비대칭, 흉부 떨림 등 구체적인 행동 패턴이 주요 지표로 선정됐다.
더불어 연구진은 이 행동지수가 단지 운동기능 저하 때문인지, 아니면 파킨슨병에만 특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지를 검증하기 위해 루게릭병(ALS) 동물 모델과 비교 실험도 진행했다. 그 결과, 루게릭병 생쥐는 운동능력이 저하됐음에도 파킨슨 행동지수가 올라가지 않았고, 움직임의 특성 역시 확연히 달랐다. 이는 AI 기반 정량 지표가 파킨슨병 특유의 증상을 반영한다는 근거가 된다.
연구팀은 이어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해 파킨슨병 동물 모델의 신경세포를 빛으로 자극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이 방식은 뇌 속 도파민을 분비하는 세포의 활성을 조절하면서 실제로 생쥐의 걸음걸이와 팔다리 움직임을 개선시키고, 떨림 증상도 줄어드는 성과를 확인했다. 특히 격일로 자극을 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며, 도파민 세포의 손실도 완화하는 결과를 보였다.
이번 연구는 국제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온라인판에 지난 8월 21일자로 게재됐으며, KAIST 박사후연구원인 현보배 박사가 제1 저자로 참여했다. 그는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미국 하버드 의대 부속 맥린병원에서 파킨슨병 세포 치료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기반 연구 흐름은 향후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신경질환 진단체계 구축과 개인별 치료 전략 설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임상 단계에서 얻은 기초 데이터를 임상으로 확장한다면, 파킨슨병뿐 아니라 다양한 신경 퇴행성 질환의 조기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법 개발에도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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