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공지능(AI)이 세상의 모든 걸 바꾼다거나, ChatGPT가 심리 상담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작 일상의 골치거리, 특히 복잡하고 반복적인 개인 금융 문제 해결에 AI를 활용하자는 논의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대시보드, 로보 어드바이저, 최신 디파이 앱 이야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 한 걸음 더 나아간, 에이전트 금융(agentic finance)이다.
듣기에 생소하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사용자가 직접 지갑과 거래소, 다리(브리지)와 스왑 방식 등을 오가며 수작업으로 일일이 처리하는 게 아니라, AI 에이전트에게 "이번 달 예산 흑자 유지"나 "가스비 부담 없이 스테이블코인 수익 최적화" 같은 목표만 제시하면 나머지를 알아서 처리해 주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사용자를 대체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조각난 금융 생태계 속에서 각각의 선택을 조율해주는 보조 시스템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미 심리 상담처럼 LLM 기반 AI와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정작 이더리움(ETH)을 유니스왑에서 스왑하려고 할 때는 여전히 직접 버튼을 눌러야 한다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2010년대 초반의 웹 포럼과 은행 백오피스를 섞어 놓은 듯한 혼란을 반복 중이다.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메타마스크, 폰 속 솔라나 지갑, 뒤섞인 디스코드 스레드까지 넘나들며 투자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인터페이스와 싸운다. 가스비는 예고 없이 뛰고, 브리지는 끊기며, 승인은 증발한다. 이런 복잡함이야말로 중앙화 거래소(CEX)에 자산을 그대로 두려는 사용자가 많은 이유다. FTX 사태 이후 신뢰가 흔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셀프 관리형 금융의 UX는 아직도 형편없기 때문이다.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내 ETH 자산 중 20%를 저위험 수익 전략에 배분하되, USDT가 디페깅하면 전략을 조정하라"고 지시하고, 나머지는 AI가 알아서 실행하는 삶. 이젠 누가 더 화려한 대시보드를 그리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똑똑한 조율자(agent)를 만드는가가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정체 상태다. 시장은 AI 기술 도입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금융과 크립토 세계의 혁신은 스프레드시트 수준의 UX 개선에 불과하다. 사용자들은 ChatGPT에 개인사를 털어놓으면서도, 1,000달러(약 139만 원)를 USDC에서 stETH로 옮기고 슬리피지를 1% 이내로 유지하며 탄소 배출량까지 고려하라고 하면 업계는 고개를 젓는다.
이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규제 당국의 반응을 우려하거나, 플랫폼이 사용자 통제를 놓칠까 봐 주저하는 것이다. 물론 악의적인 개발자들이 불완전한 에이전트를 만들어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외면한다고 변화가 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에이전트 금융이 도입되면 사용자의 충성도는 플랫폼이 아니라 에이전트로 이동하게 된다. 우리는 코인베이스, 로빈후드가 아니라 최고의 조율기(agent)를 중심으로 투자하게 될 것이다. 다섯 개의 CEX와 열 개의 디파이 프로토콜을 넘나들며 전략을 분산하고 협업할 수 있는 에이전트는, 금융의 새로운 관문이 될 수 있다. 앱도, 지갑도, 브로커리지도 아닌, 에이전트 중심의 생태계가 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자정에 깨어 일회성 승인 클릭을 하거나, 자금이 체인 다리 위에 묶였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해명을 하는 일이 줄어들기를 원한다. 인터페이스가 아닌 결과 중심의 금융 경험을 원한다.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때다. 대시보드는 미래가 아니다. 밈코인, P2E, AI 연동 서비스 모두 유행처럼 떠올랐지만, 진정한 도약은 바로 자율성과 실행력을 갖춘 에이전트가 대중적 도구로 자리잡을 때 이뤄진다.
물론 반론도 나올 것이다. AI에게 자산을 맡기는 건 위험하다는 주장, 규제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사람들이 직접 금융을 배워야 한다는 이상론. 하지만 똑같은 말들은 과거 온라인 뱅킹, 자동결제, 알고리즘 트레이딩 도입 당시에도 반복됐던 이야기다.
에이전트 금융은 인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클릭과 에러 메시지 대신 전략에 집중할 여유를 주는 방식이다. 목표는 ‘파이낸스’의 통제권을 사용자가 되찾는 것이다. 그것이 엑셀 디버깅이 아니라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처럼 직관적인 금융을 만드는 이유다.
이 방향을 먼저 받아들이는 기업이 미래를 이끌게 될 것이다. 과거의 사고방식에 붙들려 대시보드를 붙잡고 있는 기업은 결국 고통을 즐긴다는 환상에 빠질 뿐이다. 신뢰할 수 있는 금융 에이전트가 첫선을 보이는 순간, 돌아갈 길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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