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세계 174개국을 대상으로 한 인공지능(AI) 준비도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경제 규모나 인구, 기술 기반 산업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전략과 장기적 투자, 공공 중심의 디지털 리더십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2024 인공지능 준비도 지표’(AI Preparedness Index)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총점 0.801을 기록해 조사 대상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지표는 디지털 인프라, 혁신 역량, 노동시장 정책, 규제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AI 기술이 각국의 경제에 얼마나 잘 융합될 수 있는지를 수치화한다.
싱가포르는 2014년부터 ‘스마트 국가’라는 큰 틀의 전략 아래 디지털 혁신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특히 2019년에는 ‘국가 AI 전략 1.0’을 발표하면서 교통, 헬스케어, 교육, 국경 관리 등 5대 분야에 AI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생성형 AI의 부상이 가속화된 2023년에는 전략을 ‘2.0’으로 개편하고, 향후 5년간 10억 싱가포르달러(우리 돈 약 1조 원) 이상을 투입해 AI 전문가 1만 5천명을 양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술 자립보다는 전략적 협업에 방점을 찍은 점도 주목된다. 싱가포르는 미국 및 중국의 기술 대기업들이 개발한 AI 원천 기술을 자체 개발하기 어려운 대신, 이들 기업을 정부 주도로 유치해 ‘테스트베드(Testbed)’ 역할을 자처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엔비디아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싱가포르에 연구센터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국 대학 및 연구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국 인재 양성과 기술 흡수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AI를 선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전용 AI 비서인 ‘페어’는 정부 보안 체계와 상용 대형언어모델(LLM)을 접목해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도 데이터 유출 위험을 최소화했다. 현재 전체 공무원의 3분의 1이 정기적으로 이를 활용할 정도다. 의료·교육 등 민감한 정보가 다뤄지는 분야에는 보다 보수적인 접근을 취해 안전성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AI 규제와 교육 측면에서도 민첩한 대응이 두드러진다. 싱가포르는 AI를 포괄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고, 대신 기업이 자율적으로 따를 수 있는 윤리 기준과 검사 도구를 만들어 권장하고 있다. '모델 AI 거버넌스 프레임워크'와 'AI 베리파이' 등이 그 예다. 아울러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AI 교육 과정인 ‘AI 포 펀’을 도입하고, 고령층에게는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맞춤형 AI 교육을 제공하는 등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교육도 병행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적으로 국가 전체의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초 다지기로 평가된다.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보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사회 전반에 확산시킬 수 있는 기반을 갖춘 나라가 AI 시대의 선도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싱가포르는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세계 각국의 AI 정책이 싱가포르 모델을 참고해 자국 실정에 맞춘 전략을 수립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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