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황금기인가 거품인가… 엔비디아·구글 등 '초거대 투자'에 시장 긴장

| 김민준 기자

엔비디아(NVDA)의 예상을 웃돈 실적 발표가 AI 투자 거품 우려를 잠시나마 진정시켰지만, 고평가된 기술주에 대한 회의감은 여전히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실적 발표 직후 3% 하락한 엔비디아 주가는 투자자들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는 수익 확대를 발판으로 초대형 AI 프로젝트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인공지능 스타트업 앤트로픽에 총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 원)를 투자하며, 동반 투자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FT)가 투입한 50억 달러의 두 배에 달하는 공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여기에 AI 음악 스타트업 수노와 사우디 아라비아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그리고 브룩필드가 주도하는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규모 인프라 투자에도 GPU를 공급하며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한 전략적 확장은 엔비디아가 기존 칩 제조사에서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자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 스타트업에 대한 거대한 자본 유입도 이어지고 있다. 제프 베조스가 공동 창업한 피지컬 인텔리전스는 최근 로봇 AI 기술 고도화를 목표로 6억 달러(약 8,640억 원)를 유치했다. 멀티모달 모델 개발사 루마 AI는 9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 일본 사카나 AI는 1억 3,500만 달러(약 1,944억 원) 투자를 이끌어내며 AI 분야의 자금 쏠림 현상을 증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그나이트 컨퍼런스를 통해 자사 AI 전략의 핵심으로 ‘AI 에이전트 슈퍼스토어’를 공개했다. 새롭게 선보인 ‘에이전트 365’는 기업이 자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AI 에이전트를 연결, 통합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통합 제어 플랫폼으로, 기존 인프라와의 연동성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이와 함께 ‘패브릭 IQ’는 실시간 데이터 통합과 분석을 통해 에이전트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지능화된 데이터 허브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실제 수요는 아직 신중한 편이다. 발표 현장을 찾은 2만여 명의 관람객에게 마이크로소프트의 발표가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공급자와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수요자 간 괴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이 가운데 실리콘 밸리 주요 분석가들 사이에선 “제품은 많았지만 열정은 부족했다”는 뼈아픈 평가도 나왔다.

정책 영역에서도 AI 규제가 본격화될 조짐이 포착됐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정부가 주정부의 AI 법안을 사전에 무력화할 수 있는 행정명령 서명을 검토 중이다. 이는 AI 산업을 규제하는 대신 육성에 방점을 찍은 정책 기조의 연장선으로, 빅테크 기업들의 로비 효과가 현실화되는 흐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구글(GOOGL),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등 주요 플레이어에겐 일종의 규제 우회 길이 열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구글은 AI 모델 분야에서 주도권 탈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공개된 ‘제미니 3’는 성능 지표에서 주요 경쟁자를 압도하며 시장의 기대치를 넘어섰고, 이에 알파벳 주가는 발표 당일 6% 급등했다. 이미지 생성과 추론 기능을 탑재한 ‘나노 바나나 프로’ 출시, 딥마인드의 최신 기상 모델 출시 등도 이어지며 구글 AI 역량이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다. 이러한 상황은 오픈AI CEO 샘 알트먼조차 경쟁자의 발걸음을 의식케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AI 산업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흐름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장비 투자다. AI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사 람다는 15억 달러(약 2조 1,600억 원) 이상을 확보해 데이터센터 확충에 나섰고, 소프트뱅크는 65억 달러(약 9조 3,6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기업 앰페어 인수를 성사시키며 AI 칩 경쟁으로의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대한 자금 이동과 기술 진보에도 불구하고 AI 버블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투자자들 사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구글 CEO 서지하(Sundar Pichai) 역시 최근 알고리즘 황금기를 ‘비합리성 요소가 스며든 투자 붐’으로 지칭해 신중론에 힘을 보탰다.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AI가 실질적 생산성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향후 분기 실적과 기술 수용 속도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