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기업들이 인프라 투자 확대에 나서면서 채권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선 가운데, 일부 기업의 높은 금리와 신용 우려가 월가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1월 23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최근 아마존, 알파벳(구글 모회사), 메타플랫폼(페이스북 모회사), 오라클 등 미국 대형 IT기업들이 약 900억 달러(한화 약 133조 원)에 달하는 투자등급 채권을 발행했다. 이 금액은 이들 기업이 지난 40개월간 발행한 전체 채권 규모를 이미 넘어선 것으로, 이례적인 수준이다. 대부분 AI 데이터센터 확충이라는 명확한 투자 목적을 갖고 있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회사채가 시장에 쏟아지자 투자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기업마다 신용 등급과 자금 여력이 다르다 보니 채권 발행 조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알파벳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높은 현금 유동성을 지닌 기업들은 별다른 문제 없이 자금을 조달한 반면, 상대적으로 보유 자금이 적고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의 공격적인 AI 투자로 주목받는 메타의 경우, 지난 10월 말 300억 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면서 기존 자사 채권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했다. 일부 만기 채권은 발행 이후 유통시장에서 금리가 더 오르기도 했다. 신용등급 AA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한 단계 낮은 IBM 수준까지 치솟은 것은 투자자들이 메타의 재정 상황을 그만큼 경계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라클의 경우 상황이 한층 더 복잡하다. 신용등급 상으로는 투자등급 내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는데, 그 때문에 오라클 채권의 금리는 동종 기술기업 중 가장 높다. 실제로 오라클 관련 신용부도스와프(CDS, 기업 부도 위험을 헤지하는 보험성 금융상품) 가격은 최근 몇 주 새 빠르게 상승했다. CDS 가격이 오르면 해당 기업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커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여파는 주가에도 반영돼, 오라클의 주가는 11월 들어서만 24% 하락했다.
이보다 더 낮은 신용을 가진 기업도 있다. AI 클라우드 제공업체 중 유일하게 투기등급(정크본드)으로 분류되는 코어위브는 올해 7월 2031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는데, 해당 채권은 최근 달러당 92센트에 거래됐다. 금리 기준으로 약 11% 수준이며, 이는 신용등급 CCC(채권 중 최하위권 수준) 평균 금리와 맞먹는다. AI 데이터센터 업체 테라울트와 사이퍼 마이닝도 70억 달러 상당의 투기등급 채권을 최근 발행했다. 이처럼 고금리가 적용된 정크본드가 늘어나면 시장 전반의 신용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식과 채권 시장의 상관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의 존 로이드 글로벌 신용 책임자는 "AI 관련 주가가 하락하면 채권 시장도 나쁜 성과가 나올 수 있고, 그 반대도 성립된다"며 "현재 금융시장은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앞으로 AI 기술기업들의 자금 조달 전략에 따라 투자자 심리와 시장 금리 변동성이 더욱 커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특정 기업의 재무 안정성을 넘어, AI 산업 전반에 대한 기대와 부담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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