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조 원 몰린 AI 스타트업… '고유 데이터·컴퓨트 인프라'가 승부처

| 김민준 기자

2025년 인공지능(AI) 벤처 생태계는 전례 없는 규모의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요동쳤다. AI 스타트업들은 한 해 상반기에만 약 1,000억 달러(약 144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모으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금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메가딜을 중심으로 AI 기술, 인프라, 응용계층 전반에 걸쳐 자금이 집중되면서 관련 기업들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크런치베이스는 주요 AI 벤처 투자자 6인을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시장 구조, 스타트업 투자 전략, 차세대 성장동력에 관해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필리프 보테리 액셀(Accel) 파트너는 미국 내 6대 ‘슈퍼 기업’ — 엔비디아(NVDA), 마이크로소프트(MSFT), 애플(AAPL), 알파벳(GOOGL), 아마존(AMZN), 메타(META) — 들이 AI 인프라에 수천억 달러의 현금흐름을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 자본에도 불구하고, AI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이 여전히 신규 분야를 개척할 기회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액셀은 앤트로픽, 퍼플렉시티, 시네시지아, 사이에라 등 모델 및 어플리케이션 층에 걸친 AI 기업들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왔다.

스티브 바살로 파운데이션 캐피탈 파트너는 AI 산업의 병목지점이 점차 물리적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며, 칩·전력·데이터센터 등에 기반한 하드웨어 생태계가 향후 핵심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운데이션 캐피탈은 일찍이 AI 칩 메이커 세레브라스를 인큐베이팅한 경험을 바탕으로 100개 이상의 AI 스타트업에 자금을 넣었으며, 최근에는 헬스케어 인허가 자동화 기업 테너와 코딩 오류 예측 툴을 제공하는 플레이어제로에 투자했다.

델 테크놀로지스(Dell Technologies)의 벤처 부문인 DTC는 GPU 서버 판매와 함께 AI 칩 및 응용 소프트웨어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다니엘 닥터 DTC 전무는 “AI 스타트업의 투자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며, 미팅 후 이틀 만에 계약이 마무리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델은 AI 칩 스타트업 리보스(Rivos) 인수에도 나선 상태로, 현재 규제기관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시애라 벤처스의 팀 굴레리 총괄은 “컴퓨트가 병목이라면 데이터는 차별화 요인”이라고 짚었다. 시애라는 인프라부터 수직 어플리케이션에 이르기까지 AI 투자를 5개 층으로 나누고, 특히 독자적 데이터와 유통 전략이 중요한 응용층에 집중하고 있다. 굴레리는 글로벌 GDP 110조 달러 가운데 대부분이 아직 AI로 디지털화되지 않은 서비스 산업에 몰려 있다며, 향후 수십 년간 AI 기반 가치 창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펀드와 구글(GOOGL) 브레인을 공동 설립한 앤드루 응은 벤처 스튜디오 모델을 통해 데이터를 독점 확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의 펀드는 AES, HP, 미쓰이 등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실물 산업에서 데이터 기반 AI 기업을 설계한 뒤 CEO를 직접 영입해 창업에 나선다. 응은 “AI는 단일 기술이 아니라, 각 산업에서 맞춤형 기회를 만들어내는 연결망”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알파벳의 투자 부문인 GV는 기존 구글 비즈니스와 충돌할 수 있는 AI 스타트업에도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GV는 칩과 컴파일러부터 사용자 응용까지 초기에 자금을 집행하며, 빠른 매출 성장과 시장 기회를 근거로 프리미엄 밸류에이션도 수용하고 있다.

이처럼 액셀에서 시애라 벤처스, GV까지 주요 벤처캐피털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키워드는 ‘컴퓨트 자원’, ‘고유 데이터’, 그리고 ‘응용 혁신’이다. AI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기술적·산업적 변혁으로, 향후 수년간 다양한 산업군에서 새로운 유니콘 기업들을 탄생시킬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