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원 몰렸다…‘피지컬 AI’가 산업을 다시 쓰는 이유

| 김민준 기자

AI 기술이 인간의 두뇌를 기계에 이식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기존의 자동화 개념을 뛰어넘은 ‘피지컬 AI(Physical AI)’의 시대가 산업 전반에 걸쳐 도래하고 있다. 이제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로봇이 아니라, 실제 환경에서 상황을 인지하고 사고하며 적응하는 로봇이 유통과 제조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스팽스(Spanx) 물류 센터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이 물류 처리 과정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맡아 수행한다. GXO 로지스틱스(GXO) 센터에서는 애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의 이족 보행 로봇이 주문 물품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이동시키며, BMW의 미국 스파르탄버그 공장에서는 시트 금속 부품 삽입 작업에서 ‘Figure 02’ 로봇이 인간 대비 400% 빠른 속도로 성능을 입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실험이 아닌, 이미 매출을 창출하는 상업적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비디오, 오디오, 센서 등 다양한 입력을 통해 물리적 환경을 이해하고 제어하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차량, 지능형 건물, 심지어 농업용 자동화 로봇까지, 피지컬 AI는 산업의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테라다인 로보틱스(Teradyne Robotics)의 AI 총괄 제임스 데이비슨은 “기술 성숙도와 시장 수요가 맞물리는 시점, 우리가 그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시장은 지금 회의론에서 입증된 수익 모델로 넘어가고 있으며, 실제로 베조스가 투자를 단행한 피지컬 인텔리전스(Physical Intelligence)는 2024년 4억 달러(약 5760억 원)를 유치한 데 이어, 2025년엔 6억 달러(약 8640억 원)를 추가 조달하며 기업 가치를 입증했다.

전례 없는 벤처 자본의 유입은 이 분야의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실리콘밸리의 AI 스타트업 투자 비중이 전체 VC 투자의 93%에 달할 정도로, 현재는 AI 투자 일변도의 시대다. 이 중에서도 피지컬 AI 분야는 2024년 한 해에만 75억 달러(약 10조 8,000억 원)를 유치하며 핵심 투자 대상으로 부각됐다. 2025년에는 Figure AI가 10억 달러 이상을 조달했고, ‘Project Prometheus’는 무려 62억 달러(약 8조 9,000억 원)를 유치하며 시장을 뒤흔들었다.

이 같은 발전은 로보틱스 파운데이션 모델(RFM)의 등장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기존에는 특정 기능만 수행하던 로봇이 이제는 시각-언어 모델 기반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명령어를 해석하며, 실제 이동과 조작을 수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엔비디아(NVDA)의 GR00T, 구글 딥마인드의 RT-2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모델들은 명령어 하나만 있으면, 상황을 스스로 분석하고 적절한 행동을 실행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 중 하나는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WFM)이다. 이는 실제 환경을 디지털로 복제한 ‘디지털 트윈’을 통해 로봇이 가상의 시나리오에서 빠르게 학습하고, 실전에 투입될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와비(Waabi)의 ‘Waabi World’는 자율 트럭을 위한 주행훈련 플랫폼이며, 엔비디아의 ‘Cosmos’는 자율주행 및 로봇훈련용 시뮬레이션에 쓰인다.

앞으로의 산업 변화는 피지컬 AI가 단순히 사람이 하던 일을 대체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역량을 보완하고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2027년까지 AI가 인간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보다는, 협업 구조를 강화해 지능형 시스템과 인간이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 보고 있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은 2030년까지 AI 및 자동화로 인해 1억 7,00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9,200만 개의 일자리 감소보다 명백히 더 큰 수치다.

현재로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목받지만, 실제 산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자동 이송 로봇이나 협동 로봇, 지능형 팔(Robotic arms) 같은 장비들이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존(AMZN)은 이미 전 세계 물류 센터에 75만 대 이상의 로봇을 운영 중이며, AI 기반 로봇팔 ‘불칸(Vulcan)’과 자율형 로봇 ‘프로테우스(Proteus)’ 등을 통해 물류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자율주행 기술에도 확산 중이다. 와비는 올해 말까지 완전 자율 트럭 서비스를 상용화할 계획이며, 오로라(Aurora)와 토크 로보틱스(Torc Robotics) 또한 상업 테스트를 가동 중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자율 트럭 시장은 2035년까지 6,000억 달러(약 86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 모든 물결은, 인간이 일하는 방식을 다시 정의하려는 과정이다. 데이비슨은 “피지컬 AI의 성공 여부는 사용의 단순함, 신뢰성, 다재다능성, 성능이라는 네 가지 요소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산업용 로봇부터 스마트 빌딩, 자율 차량까지, 이제 물리적 환경에서 AI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 앞에서, 기업의 전략도 하드웨어뿐 아니라 AI 모델의 훈련·적용 역량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