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대부’이자 페이팔(PayPal)의 창업자, 그리고 비트코인 옹호론자인 피터 틸(Peter Thiel)이 최근 샘 울프(Sam Wolfe)와 함께 기고한 에세이 <세계의 끝으로의 항해(Voyages to the End of the World)>는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기술 발전의 끝은 과연 '유토피아'인가, 아니면 영혼이 거세된 '거짓 구원'인가.
이 에세이는 17세기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미완성 소설 《뉴 아틀란티스(New Atlantis)》를 빌려, 현대 기술 문명이 범하고 있는 치명적인 오만을 지적한다. 베이컨이 그린 이상 국가 '벤살렘'은 겉보기에 완벽하다. 질병은 치유되고, 물자는 풍요로우며, 사회는 조화롭다. 과학자들의 전당인 '솔로몬의 집'은 자연을 정복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을 신성한 의무로 여긴다.
하지만 틸은 이 완벽해 보이는 풍경 뒤에 숨겨진 '도덕적 공백'을 꿰뚫어 본다. 과거 인류에게 '구원'은 신의 영역이자, 인간의 오만을 회개함으로써 얻어지는 영적인 평화였다. 그러나 베이컨 이후, 그리고 오늘날의 실리콘밸리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은 구원의 정의를 교묘하게 바꿔치기했다. 이제 구원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로 쟁취해내는 '안전, 풍요, 그리고 불멸'이 되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피터 틸의 경고를 더욱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기술 유토피아'의 최전선에 서 있다. 우리는 초고속 통신망과 스마트폰, 그리고 곧 도래할 AI가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적 갈등조차도 더 나은 정책 시스템과 로봇 기술, 바이오 테크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술 만능주의'적 믿음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틸과 울프가 지적하듯, 이것은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다. 이것은 종교의 대체재다. 기술이 질병과 죽음, 결핍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하는 순간, 기술은 단순한 도구(Tool)를 넘어 신앙(Faith)의 자리를 꿰찬다. "모든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는 믿음은,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도덕적, 영적 책임은 없다"는 면죄부가 되기도 한다.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AI가 인류를 학살하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효율적이고, 너무나 안전해서, 인간이 더 이상 삶의 의미나 영적인 고뇌를 할 필요가 없는 세상—즉, '영혼이 빈곤한 천국'이 도래하는 것이다.
우리가 AI와 블록체인, 생명공학에 열광하는 동안, 정작 우리는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편리함이 선(善)이 되고, 불편함이 악(惡)이 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설 자리를 잃는다.
피터 틸의 에세이는 기술을 거부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자는 러다이트(Luddite) 선언이 아니다. 그는 기술 발전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묻는다. "우리가 만드는 이 강력한 도구들이, 과연 인간의 영혼과 양립할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있는가?"
기술은 우리를 더 빨리, 더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곳이 정말 우리가 가야 할 곳인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기술이 주는 달콤한 '거짓 구원'에 취해 방향키를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폭풍우 속이 아니라, 너무나 고요해서 끔찍한 '세계의 끝'에 다다르게 될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중반을 향해가는 지금, 한국의 독자들과 기술 혁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CPU나 더 높은 수익률만이 아니다. 기술의 힘을 제어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도덕적 지혜'와 '영적 분별력'의 회복이다.
진정한 위기는 기술의 실패가 아니라, 목적을 상실한 기술의 성공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편집자 주]
이 글은 피터 틸과 샘 울프의 에세이 'Voyages to the End of the World'를 토큰포스트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것입니다.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맹목적인 기대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철학적, 윤리적 함의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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