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운 글로벌 금융시장 속에서 금은 여전히 투자자들에게 가장 전통적인 ‘안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환경에서는 단순히 가격 상승만을 기대하는 ‘묻지마’ 투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디파이(DeFi)를 통한 디지털금융 혁신이 가속화되면서, 이제는 금도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으로 재설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은 역사적으로 시장 충격에 강한 방어력을 보였지만, 그 특성상 현금흐름이 존재하지 않아 장기 보유에 따른 이자나 배당 수익은 기대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값은 10여 년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재차 상승했다가 최근에는 안정세로 돌아선 상태다. 이 같은 흐름은 금이 위험 회피 수단으로는 유효하나, 지속적 수익성을 기대하기엔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디파이 기술은 금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거래가 전개되는 디지털 환경에서는 기존의 금 현물 보관 방식이나 금 ETF와는 차별화된 수익 모델의 구현이 가능하다. 실제로 테더와 팍소스와 같은 스테이블코인 사업자들이 자산 기반 금 토큰을 발행하고 있지만, 현재 이들 토큰은 물리적 금 보유를 전제로 할 뿐, 수익률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찾는 것은 높은 유동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자산이다. 예컨대, 테더의 USDT(USDt)는 스테이킹 기능이 가능해 장기 보유 시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테더골드(XAUT)나 팍소스골드(PAXG)는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 결과 양사의 금 토큰 시가총액은 각각 약 1억 2,190억 원(XAUT) 및 1억 1,660억 원(PAXG)에 불과하며, 전체 USDT 시장가치의 고작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 토큰화'를 넘어선 수익 창출 구조의 구현이다. 금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디파이 프로토콜에 투입해 스테이킹하거나, 금 채굴 기업들이 보유한 매장량을 기반으로 토큰을 발행해 디파이 생태계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디파이는 여기서 실시간 유동성 확보 시스템과 수익 배분 구조를 통해 금에 수익성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토큰화된 금은 24시간 거래, 실시간 가격 반영, 즉시 결제 등 블록체인의 장점을 그대로 적용받을 수 있으며, 전통적인 금 투자 대비 훨씬 유연한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방식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제도적 수용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의 흐름과도 궤를 같이한다. 특히 정부들이 디지털 금융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지금, 금의 디지털화는 수요 측면에서도 자연스러운 확장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금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자산으로 손꼽히지만, 더 이상 ‘보는 자산’이기만 해서는 생존할 수 없다. 디파이를 통해 금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춘다면 지금껏 누적된 신뢰에 더해 현대적 투자수단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는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의 가교 역할로, 금의 새로운 진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