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분산원장기술(DLT)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 도입을 위한 ‘투트랙(2단계) 전략’을 승인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 추진의 일환으로, 이는 유럽 금융 인프라의 현대화에 한층 속도를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
단기 전략인 ‘폰테스(Pontes)’는 블록체인 기반의 DLT 플랫폼을 유로시스템의 금융결제 서비스인 ‘TARGET’과 연동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TARGET은 유로존 내 결제 및 증권 거래를 지원하는 유럽 중앙은행의 핵심 결제 인프라다. ECB는 폰테스의 시범 시스템을 2026년 3분기 말까지 런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범 운영은 지난해 진행한 64개 기관, 총 50여 차례의 시범 실험 데이터를 근거로 설계되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활용한 토큰화 자산의 통합 결제 프로세스를 점검하게 된다.
ECB는 “시장 안전성과 효율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유로시스템의 장기적 목표에 따라 이번 결정을 내렸다”고 강조했다. 폰테스를 통해 새롭게 구상되는 통합 결제 시스템은 디지털 유로 도입 이후 각국 시스템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규제 환경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장기 플랜인 ‘아피아(Appia)’는 유럽 전역에서 통합된 디지털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고, 이와 동시에 글로벌 결제 시스템과의 상호운영성을 꾀하는 청사진을 담고 있다. 아피아는 민관 협력을 통해 DLT의 도매 결제 활용성을 심화 연구하며, 중장기적으로는 국경 간 대규모 자금 이동 효율화도 노린다. ECB는 폰테스와 아피아를 위한 시장 전문가 자문 그룹도 신설할 예정이며, 조만간 참가 의향 신청을 받을 방침이다.
이 같은 정책 방향은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실시간 결제 시스템을 모색하고 있는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예컨대, 영란은행은 2023년 국제결제은행(BIS) 런던 이노베이션 허브와 공동으로, 대규모 은행 간 거래를 DLT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시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 실시간 총액결제 시스템(RTGS)을 DLT와 연동하면 처리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일 수 있음을 입증했다.
ECB는 이번 조치에 앞서, 최근 DLT 활용에 대한 내부 탐색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은 중앙은행 화폐로 토큰화 자산을 결제할 수 있는 인프라에 큰 수요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시범 프로젝트 기간 동안 유럽 전역 64개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약 16억 유로(약 2조 2,240억 원) 규모의 거래가 DLT 기반으로 처리됐다. 이는 유럽 금융 시장 내 중앙은행 주도의 디지털 결제 시스템에 대한 기대를 뒷받침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