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와 남미에서 암호화폐 채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블록체인이 약속한 ‘금융 자주권’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신흥 시장에서 이러한 한계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많은 이들이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일상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블록체인 기반 금융 인프라의 가장 큰 허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비은행 인구가 스테이블코인이나 기타 디지털 자산을 소유하고 있지만, 해외 송금이나 안정적인 수익 창출 수단 같은 근본적인 금융 서비스는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자국 통화 가치가 불안정한 지역에서는 디지털 자산이 실질적인 금융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사용 수단이 부족해 ‘디지털 자산 → 실물 경제’로 이어지는 전환이 어렵다. 이처럼 디지털 자산은 있지만 쓸 곳이 없는 ‘역설적인 단절’이 신흥 시장에서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신흥 국가에 있어서 ‘달러화된 저축 계좌’ 역할을 하며 잠재적인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자본시장에 대한 금융 접근성을 개방하고, 블랙록의 BUIDL 펀드 같은 토큰화 자산 상품이 새로운 수익처로 인식되면서 시장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품은 기존 달러 기반 사용자들에게는 단지 또 다른 금융 상품일 수 있지만, 비달러 기반 경제권 사용자에게는 삶을 바꿀 수 있는 혁신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많은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저축은 하지만, 이를 오프램프하거나 실제로 소비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신흥 국가 사용자들은 달러 기반 자산을 보유한 채로도 현지 경제와의 연결이 단절된 일방통행식 디지털 금융에 그치고 있다.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ETF에 1000억 달러(약 139조 원)의 유동성이 즉시 확보되지만, 같은 자산의 실생활 유동성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것이야말로 금융 자주권이라는 암호화폐의 약속이 가장 필요한 지역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제 시스템 또한 여전히 가장 큰 포용의 장벽으로 남아 있다. 고물가로 고통받는 신흥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지만, 접근과 사용은 복잡한 은행 시스템이나 P2P 네트워크를 거쳐야 한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 시절 시작된 스테이블코인 규제 완화 흐름과 함께 메타, 비자, 스트라이프, 피델리티 등 빅테크와 금융사가 관련 인프라 구축에 다시 뛰어들고 있는 점은 블록체인의 국경 간 결제 혁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재의 접근 방식은 대부분 기존 금융망에 블록체인을 ‘억지로’ 끼워 넣은 중앙 집중형 모델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여전히 많은 사용자에게는 배타적인 구조로 작용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동남아시아처럼 지역 은행들이 디지털 자산 전환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며, 사용자들은 지속적으로 은행 계좌를 바꾸는 고충을 겪고 있다. 아프리카나 남아시아처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접근조차 어려운 지역에서는 이런 ‘라스트마일’을 해소할 오프램프조차 마땅치 않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금융 시스템의 전면적 재디자인이 요구된다. 이메일과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모바일 결제로 곧장 진입한 중국처럼, 신흥 시장 역시 디지털 금융 혁신의 중심축이 될 수 있다. 전통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만큼, 오히려 블록체인 네이티브 뱅킹 서비스가 가장 빠르게 채택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현재의 우호적인 규제 환경 덕분에 이들 시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실생활에 도입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요한 한 조각이 빠져 있다. 기존의 대부분 서비스는 셀프 커스터디 지갑이나 직불카드를 통해 오프램프는 제공하지만, 온램프 수단은 너무나 부족하다. 금융 순환고리를 완성할 수 있는 계좌 기반 모델이 부재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오프램프 기능이 통합된 ‘풀루프(full-loop)’ 금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더리움 기반 모듈형 레이어2 네트워크와 연동되는 암호화폐 네오뱅크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설계도로 제시된다. 인프라 자체를 보유함으로써 전통 금융기관을 통한 예금 이체를 포함해 경제적 효율을 확보할 수 있다. 현 시스템은 사용자로 하여금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도록는 하지만, 실물 경제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 있는 ‘호텔 캘리포니아’식 구조에 갇히게 한다. 특히 신흥 시장 사용자들의 경우, 통화 상실 위험은 벗어나도 생활 소비 연결선은 여전히 막힌 상태다.
결국 진정한 금융 생태계는 실물 월급 수령 → 디지털 자산 저장 → 일상 소비까지 가능한 완성형 시스템으로 귀결된다. 특히 급여를 직접 스테이블코인으로 수령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 간 마찰 없는 연결이 가능해진다. 이 때 암호화폐 네오뱅크는 단일한 혁신이 아닌, 사용자의 익숙한 경험을 기반으로 점진적 변화를 유도하는 핵심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스템은 분산형이면서도 모두에게 공정한 금융 접근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애플이 스마트폰을 직관적인 사용자 경험으로 대중화시킨 것처럼, 암호화폐 네오뱅킹도 탈중앙화된 금융을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사용자가 블록체인 기술의 복잡성을 인식하지 않고도 접근할 수 있도록 사용자 경험(UI/UX) 측면의 혁신이 병행될 때, 진정한 세계적 금융 포용이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