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아프리카에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앱이 아닌 '테이블에 앉을 권리'

| 손정환 기자

암호화폐 분야가 아프리카의 금융 포용을 외치며 수많은 프로젝트를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권한과 결정권은 외부 개발자 손에 있고, 지역 상황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 아프리카에 또 하나의 전자지갑 앱은 필요치 않다. 진정 필요한 것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자격**, 즉 주체적인 참여다.

수많은 기업들이 아프리카 대륙을 ‘미개척 시장’으로 규정하며 전자지갑, 송금 앱 같은 기성 제품을 들여오지만, 이는 현지 인프라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진 표면적인 접근이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하고 데이터 비용이 높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고사양 솔루션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변화는 **겸손과 인내**, 그리고 현지 개발자와의 협업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지 개발자들은 이미 저대역폭·오프라인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실용적 블록체인 기반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탄자니아, 짐바브웨, 차드와 같은 국가에서는 미세 결제가 중요하다. 이들은 비트코인(BTC) 같은 투기성 자산보다, 간단하고 신뢰 가능한 송금 수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부 프로젝트는 여전히 충전·마이닝·토큰 상장에만 초점을 맞추며, 진짜 문제 해결에는 관심이 없다.

수익 일부를 현지 커뮤니티에 환원하는 구조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환경·물류 인프라를 운영하는 지역 공동체에 거래 수수료 일부를 자동으로 재분배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이러한 분산형 설계는 단순한 **시혜가 아닌 구조적 공정함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친환경적인 운영도 아프리카에서는 필수다. 일부 블록체인 시스템은 이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참여자만 보상하는 합의 알고리즘을 실험 중이다. 이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방식에서 탈피해,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의 일환이다.

궁극적으로 아프리카가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전자지갑, 또 하나의 온체인 저축 앱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자본(인내 자본)**, 문화적 맥락에 맞춘 툴,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발 초기부터 아프리카 인재들과의 **동등한 협력**이다. 지금까지의 패턴은 기술의 일방적 수출이었다면, 앞으로는 상호 역량을 인정하고 공동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블록체인이 진정으로 아프리카에 뿌리내리려면, 그것이 자원 추출 산업처럼 지역의 것을 빼앗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 이 기술은 경제적·환경적·구조적 측면에서 지역에 되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는 구조적 구호의 대상이 아니다. 존중받을 파트너이며, **블록체인 산업의 대등한 참여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이전이 아니라 **진정한 참여와 소통**, 그리고 세계적인 암호화폐 생태계 속에서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한 자리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