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이 웹3 기술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 시스템 구축이라는 새로운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문화와 가치를 중시하는 이 히말라야 국가는 자국 고유의 철학인 ‘국민총행복(GNH)’을 근간으로 기술과 관광 분야에서 점진적인 혁신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부탄은 과거부터 기술 규모 확장보다 주권 보존을 선택해왔다.
최근 몇 년간, 부탄은 수력 발전을 활용한 비트코인(BTC) 채굴 사업, 수도권 개발 프로젝트인 겔레푸 명상도시의 암호화폐 준비금 마련, 그리고 바이낸스와의 협업을 통한 암호화폐 결제 도입 등으로 주목받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 인프라는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국가의 암호화폐 확장 전략을 보완하는 핵심 기술로,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할 수 있다.
부탄의 독특한 작명 문화는 탈중앙 신원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 부탄에서는 성씨 없이 한두 개의 이름만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이 이름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사원에서 승려가 정해주는 방식으로 부여되기 때문에, ‘카르마’, ‘타시’, ‘소남’과 같은 성별 중립형 이름이 널리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SNS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검색하면 수천 명의 동명이인이 나타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공식 문서나 학교, 직장에서 ‘출신 지역’을 함께 표기하는 관례도 있다. 예를 들면, ‘파로 출신 권리 도르지’ 식의 식별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단, 같은 지역 출신의 동명이인이 여러 명일 경우, 국가 신원 번호로 특정 인물을 식별하게 된다. 현재의 시스템은 전통적 환경에서는 잘 작동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는 새로운 신원 관리 방식이 필요해질 수 있다.
유럽연합(EU), 독일, 한국 등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신원 시스템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부탄도 이를 벤치마킹해 독자적인 디지털 정체성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다. 자국 주권을 중요시하는 부탄의 철학과 분산형 신원 인프라 구조는 자연스럽게 부합한다. 이는 외부 간섭 없이 자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면서 인프라 현대화를 가능케 한다.
나아가, 디지털 ID를 통해 대학 졸업장, 직업 자격증, 직무 교육 이력 등을 글로벌 수준으로 검증 가능하고 이동이 자유로운 방식으로 통합할 수 있다. 특히 해외 취업을 꿈꾸는 부탄 국민들을 위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부탄의 보건 의료 체계는 대부분 공공 재원에 기반한다. 필요한 경우, 환자를 외국에 이송하는 비용까지도 정부가 부담한다. 이런 상황에서 블록체인 신원 시스템을 의료 기록 관리에 연계하면 환자의 건강 이력 추적이 한층 수월해질 수 있다.
또한, 이 시스템은 금융 접근성이 부족한 미거주자와 무은행인을 위한 디지털 KYC(고객확인절차)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는 법적 신뢰성과 AML(자금세탁방지) 규정 준수를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국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인다.
부탄은 현재 암호화폐 기반 관광 활성화도 추진하고 있는 만큼, 블록체인 ID 시스템을 활용한 관광객 관리에도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 문화적 주권과 정신적 가치관을 반영한 기술 통합 사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현실적인 도전 과제도 존재한다. 지방의 낮은 디지털 문해력과 인터넷 인프라 보급률은 광범위한 디지털 ID 시스템의 장벽이 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사용자 맞춤형 교육 캠페인과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부탄은 세계적으로 드문 탄소 네거티브 국가인 만큼, 블록체인 도입 시 에너지 사용량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다행히 국가 전력이 대부분 수력 발전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청정하고 경제적인 에너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부 관점에서는 완전한 탈중앙화로 인한 통제력 저하가 우려될 수 있다. 그러나 퍼블릭 블록체인 대신 허가형 블록체인을 선택하면 보다 중앙집중적인 형태의 관리가 가능하므로, 정책 조율 역시 유연해질 수 있다.
결국, 부탄이 선택해야 할 방향은 효율성과 주권 보호, 기술 혁신 사이의 균형이다. 분산형 디지털 신원 시스템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국가적 가치를 반영하는 윤리적 디지털 전환의 상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