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3, 진짜 자유의 기술이 되려면? '프라이버시·자기보관·인권' 설계에 달렸다

| 김민준 기자

암호화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위한 '자유의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최근 업계 곳곳에서는 점점 더 많은 빌더와 사용자들이 암호화폐 기술이 권력을 분산시키기보다 오히려 집중시키고 있다는 회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감시의 확장, ‘혁신’을 명분으로 포장된 중앙집중화로 인해 기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우려는 단순한 추정이 아니다. 최근 AI 음성 사기, 딥페이크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유럽연합의 AI 법안이나 정부 주도의 생체인식 ID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면서, 디지털 권리가 공공 논의 없이 규정되는 사태가 빈번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진짜 질문은 ‘인권을 기술 시스템에 넣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그렇게 할 것인가’로 전환되고 있다.

문제의 근본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설계하는 데 투입된 가치 체계다. 암호화폐 생태계가 앞으로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인권 가치에 기반한 아키텍처 설계가 필수다. 개인 자산의 직접 보관(Self-custody), 보편적 디지털 인격(Personal Identity), 기본값으로서의 프라이버시는 더 이상 선택적 기능이 아니라, 자유를 이야기하는 모든 시스템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특히 많은 이들이 강조하는 ‘자기보관’은 여전히 높은 장벽을 갖고 있다. FTX와 같은 중앙 거래소의 붕괴 사례는 자산을 스스로 보관하는 구조로의 전환 필요성을 부각시켰지만, 대부분의 솔루션은 고급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돼 누구나 접근하기 어렵다. 암호 키 분실, 어려운 인터페이스, 불안정한 백업 환경은 실제 사용자에게는 위험한 약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새로운 보관 시스템은 보안, 간편함, 자율성의 균형 속에서 사용자 권한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단지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사용 가능한가라는 관점에서 설계돼야 한다.

AI가 생성한 콘텐츠가 점점 실제 인간처럼 정교해지고, 봇 계정이 웹을 점령하는 시대다. 이제는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자체가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 주도 생체 인증이나 빅테크 인증 체계에 의존할 경우, 프라이버시 침해와 통제 위험이 심각해질 수 있다.

대안은 검열 불가능하고 탈중앙적인 인격 인증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면서도 디지털 공간 내 자유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포괄성과 신뢰가 작동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위한 기반이다.

프라이버시는 단순히 기능이 아니라 권리다. Web2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용자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면, Web3는 이러한 악순환을 멈출 책임을 지닌다. 하지만 현재 많은 프로젝트에서 프라이버시는 여전히 부가 기능으로 취급되고 있다. 디자인 초기부터 프라이버시가 중심이 돼야 하며, 어떤 시스템이든 기본적으로 가시성이 아닌 보호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물론 가치 중심의 시스템 설계가 오남용되거나 정치화될 수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가치 내재화가 현실 정치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자체는 충분히 타당하다. 하지만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대신, 투명한 시스템 설계, 개방형 거버넌스, 다양한 이해관계 조율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그 위험을 줄이고 사용자 책임성을 실현할 수 있다.

Web3 기술은 책임 있는 구축과 설계가 동반될 때에만 진정한 권력 분산과 커뮤니티 자치를 가능케 한다. 자유를 지향하는 기술은 출시 이후에 윤리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근본 설계 단계에서부터 인간의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인권은 더 이상 외부에서 주입되는 안전장치가 아니라, 디지털 인프라의 내재된 운영 원칙이 돼야 한다. 이것은 단지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지금 바로 코드에 가치를 녹여야 할 실질적 설계 과제다. 기회는 아직 열려있지만, 그 창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