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산업이 처음 내세운 이상은 탈중앙화와 개인의 자율성, 그리고 ‘중앙 중개자 없는 시스템 구축’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프로젝트는 여전히 몇몇 인물에 의존하며, 설계된 이상과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리더 중심의 프로젝트는 구조적 취약성을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위험에서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거버넌스를 가진 커뮤니티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구조는 반복적으로 암호화폐 산업을 실패로 이끌고 있다. 거래소, 디파이, 온체인 프로젝트 할 것 없이 창립자를 마치 예언자처럼 떠받들고, 그 영향력이 시스템까지 압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개별 인물이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구조는, 중앙화를 타파하기 위해 시작된 암호화폐의 본질에 정면으로 반한다.
이러한 집중화된 영향력은 투자자에게도 잘못된 기대를 심어준다. 자신이 투자한 프로토콜의 기술이나 구조가 아닌, 리더의 말과 생각에 의존하며 프로젝트를 ‘사람’으로 동일시한다. 이는 전통 금융, 정치, 심지어 대중문화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패턴과 같다. 파워가 집중되면 실패는 필연이다. 암호화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지만, 오히려 더 큰 혼란과 비효율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DAO(탈중앙화자율조직)다. 제대로 설계된 DAO는 위계와 권력을 ‘기여도 기반의 소유 구조’로 대체한다. 한 사람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이 각자의 영역에서 리더 역할을 수행하며, 명령 체계 없이 커뮤니티적 접근으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다. 물론 최종 합의에 시간이 걸리고, 혼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혼란은 곧 구성원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는 진짜 탈중앙화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리더가 없는 시스템’이 아니라 ‘리더가 다수인 시스템’이다. 여러 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여하고 책임지는 구조는 단일 리더 중심 구조보다 훨씬 더 강한 내구성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언제나 강력한 인물, 서사가 있는 리더를 따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창립자 신화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취약하다. 창립자의 사퇴, 추문, 또는 정치적 충돌만으로도 커뮤니티는 분열되고 프로젝트의 방향성은 흔들린다. 크립토 업계가 지금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닌 시스템이다.
이 문제는 이제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규제 환경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이용 가능할 땐 암호화폐를 수용하지만, 권력과 충돌한다고 판단되면 단칼에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선 리더 중심의 프로젝트일수록 손쉬운 타깃이 된다.
반대로 제대로 설계된 DAO는 이처럼 중앙화된 정치 전술에 훨씬 더 강하다. 미국 의회가 몇몇 인물을 불러내 청문회에 세울 수는 있어도, 전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 전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DAO의 분산된 책임과 글로벌 구조는 정치적 리스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막이다.
이 산업이 이제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말뿐인 탈중앙화를 넘어 진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암호화폐 산업은 전통 금융과 빅테크의 틀 속으로 다시 편입될 것이고, 역사 속의 일시적 소동으로 끝날 것이다. 한쪽에선 여전히 창시자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를 둘러싼 환호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어두운 이면에는 이미 수많은 프로젝트가 쉽게 흔들리는 구조적 취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는 전략적으로 판단할 시간이다. 크립토의 생존은 리더 개인의 신화가 아닌, 시스템 구조에 달려 있다. 업계를 지켜보는 권력 집단들은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으며, 카리스마에 기대는 프로젝트들을 언제든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전이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 소수가 아닌 다수가 리더십에 참여하고 의사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권력의 우상화는 지금 이 시점에서 반드시 종식돼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