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자산(RWA)의 토큰화가 파일럿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금융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국채를 토큰화한 발행 잔액은 2025년 9월 기준 약 74억 달러로, 전년 동기 20억 달러 대비 약 3.7배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기인한다. 블랙록(BlackRock)의 BUIDL 토큰화 유동성 펀드는 2025년 3월 운용자산(AUM)이 1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프랭클린 템플턴(Franklin Templeton)도 벤지(Benji) 앱과 '프랭클린 온체인 미국 정부 자금 펀드'를 통해 온체인 머니 마켓 인프라를 확장하고 있다.
Aave의 'Horizon' 등 주요 플랫폼은 자격을 갖춘 기관이 토큰화된 펀드 및 기타 실물 자산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빌릴 수 있도록 지원하며, Morpho와 같은 DeFi 대출 플랫폼도 온체인 신용 노출을 담보로 활용하는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토큰화된 현금성 자산 및 사모 신용 청구권에 대한 레버리지, 헤지, 유동성 관리 툴킷이 빠르게 확장 중이다.
“자산 토큰화만으론 유동성 확보 어려워”…브랜드 신뢰 중요성 강조
그러나 토큰화된 자산이 모두 높은 유동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B2B 토큰화 플랫폼 친타이(Chintai)의 전무이사 조쉬 고든(Josh Gordon)은 “자산을 토큰화한다고 해서 반드시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며 “그렇다고 해서 유통 수요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두 자릿수 온체인 수익률조차도 브랜드 신뢰, 명확한 인수, 그리고 유통 없이는 유동성을 끌어내기 어렵다”며 “이 분야에서 유명 브랜드의 등장은 기반 기술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 넘어 채권·사모 신용으로…레버리지 접근성 관건
스테이블코인은 현금성 RWA가 실현 가능한 자산군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고든 전무는 다음 시험대는 토큰화 채권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12% 수익률의 구조화 상품이 있고 8%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다면 유동성은 자연히 창출될 것”이라며 “문제는 유통이 아니라 레버리지 접근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더 많은 오프체인 자산이 온체인으로 유입되길 원한다”며 “이미 인수되고 신뢰받는 자산일수록 유동성 수요를 촉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 환경도 토큰화 확산을 뒷받침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프로젝트 가디언(Project Guardian)’은 개념증명(PoC) 단계를 넘어 최소 24개 기관이 참여하는 프레임워크로 전환됐으며, 아부다비 글로벌 마켓(ADGM)은 디지털 자산 제도를 개정해 허용 자산 범위와 위험 관리 기준을 명확히 했다.
한국 역시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규정을 준수하는 유통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이는 RWA에 대한 소매 시장의 높은 관심을 제도권 안으로 유도하려는 흐름이다.
상품 구성도 다양화되는 추세다. 여전히 토큰화된 국채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나, 온도 파이낸스(Ondo Finance)는 단기 국채에서 미국 외 투자자 대상의 주식 및 ETF로 상품 영역을 확장하며 온체인 주식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RWA 시장의 새 촉매는 ‘대출’과 ‘유통 채널’
향후 시장 확대의 핵심 촉매제로는 ▲토큰화된 자산 담보 대출 ▲유통 채널 확장이 꼽힌다. 토큰화된 펀드와 사모 신용을 담보로 인정하는 플랫폼이 증가하면서 시장 유동성이 커지고, 수익률 스프레드가 줄어들어 시장 조성자와 대차대조표 기반 대출 기관을 유입시킬 수 있다.
또한 중앙화 거래소와 전문 플랫폼은 자격 요건을 갖춘 사용자 대상의 토큰화 시장을 모색하고 있으며, 규제 정비 전까지는 래핑이나 파생상품 구조를 통해 투자자 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제도적 성숙과 맞물리며 “토큰화 가능성”이 아닌 “온체인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과 금융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가”로 논의가 옮겨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미 토큰화된 미국 국채가 시장에서 유의미한 수요를 확인했고, 기관들이 모델을 검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토큰화 채권 대출 인프라는 마련됐으며, 다음 단계는 사모 신용으로의 확장”이라며 “과도한 위험 없이 온체인 금융이 깊이, 투명성, 그리고 24시간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