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낸스 가격 오라클 오류 탓에 26조 원 증발…역대 최대 청산 사태

| 서도윤 기자

10월 10일, 암호화폐 시장은 역대 최대 규모의 청산 사태를 겪었다. 코인글래스(CoinGlass)에 따르면 이날 하루 동안 청산된 규모는 약 190억 달러(약 26조 4,100억 원)에 달했으며, 선물 미결제 약정 규모도 650억 달러(약 90조 3,500억 원)나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12억 달러(약 1조 6,700억 원)나 FTX 붕괴 때의 16억 달러(약 2조 2,200억 원)를 훨씬 능가하는 수치로, 단일 사건 기준으로는 유례없는 규모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쫓은 시장 조사는 바이낸스의 내부 가격 오라클 체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공통된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고정가치 암호화폐 세 종목—USDE, bnSOL, wBETH—이 있다. 이들은 시세 기준을 외부 오라클이 아닌 바이낸스의 내부 거래소 주문장 데이터에 의존했으며, 이 설계 구조로 인해 시장 급변 상황에서 담보가치가 비정상적으로 하락해 '통합 계정(Unified Accounts)' 기능을 사용 중이던 투자자들이 대규모 청산 위험에 노출됐다.

일각에서는 이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조직적 공격 가능성도 제기됐다. 실제로 USDE 관련 청산 규모는 약 3억 4,600만 달러(약 4,807억 원) 수준으로, wBETH의 1억 6,900만 달러(약 2,349억 원), bnSOL의 7,700만 달러(약 1,070억 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스테이블코인 거래쌍에서 매수 호가 유동성이 일시에 사라진 점은 의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AI 기반 시장 데이터 분석 업체 레나랩스(Rena Labs)의 이상 탐지 엔진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USDE의 시장 붕괴는 구조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었다. UST(테라USD)나 USDC의 페깅 실패와 달리, USDE는 당시 확정된 담보 불안 요인이 없었다. 오히려 발행 및 상환은 예전처럼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장애 요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심 유동성 제공자들(마켓 메이커)은 거래쌍에서 순식간에 손을 뗐다.

레포트에 따르면 사고 직전까지 USDE 거래쌍 유동성은 약 8,900만 달러(약 1,237억 원)로 매수·매도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21시 40분부터 21시 55분(UTC) 사이, 바이낸스 내 해당 쌍의 유동성은 74% 가까이 급감해 약 2,300만 달러(약 320억 원)로 쪼그라들었고, 21시 54분경에는 실질적인 시장 깊이가 전무한 상태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종목의 스프레드는 일시적으로 22%까지 치솟으며, 투자자들은 합리적인 시세로 거래를 진행할 수 없는 극단적인 조건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시장이 얼마나 복잡한 자동화된 전략과 유동성 알고리즘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바이낸스처럼 막대한 거래량을 보유한 중앙화 거래소에서의 가격 데이터가 외부 오라클로부터 독립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는 향후 시장 안정성 측면에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경고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