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에서 열린 ‘코리아 핀테크 위크(Korea Fintech Week) 2025’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열린 ‘핀테크 시대의 새로운 금융 인프라: 디지털화폐의 현재와 미래’ 세션에서는 디지털화폐 연구·정책·산업 전반을 두고 한국은행과 글로벌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 한국은행 “CBDC·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 함께 가는 구조 필요”
첫 발표에서 김동섭 한국은행 디지털화폐기획팀장은 한국은행이 수년간 진행해 온 CBDC 모의실험과 토큰 기반 금융 인프라 연구를 소개하며, CBDC·예금토큰·스테이블코인이 공존하는 미래 인프라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최근 스테이블코인의 잠재적 리스크를 언급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오해가 있지만 기술적 필요성과 효율성에는 충분히 공감한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은 위험 요인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토큰 기반 디지털화폐가 조건부 지급·자동 정산 등 프로그래머블 기능을 통해 금융·물류·전자상거래에서 혁신적인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홍콩에서 스테이블코인 또는 CBDC를 활용한 결제 자동화 파일럿이 진행된 사례도 소개했다.
CBDC 실험과 관련해 그는 “한국은행은 발행·유통·환수 등 전 라이프사이클을 구현한 모의 CBDC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오프라인 결제와 영지식증명 활용 등 기술 연구도 병행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적 근거, 예금 대체 가능성, 뱅크런 가속 등 경제적 영향 때문에 신중한 도입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주요국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은 지갑을 광범위하게 확산했으나 아직 공식 도입 단계는 아니며, 유럽은 2029년 도입 목표를 언급했지만 정치적 논쟁이 있다. 미국은 범용 CBDC 연구 자체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은 CBDC 단독 접근이 아닌 △기관용 CBDC(홀세일 CBDC) △예금토큰(Tokenized Deposit) △외부 스테이블코인 연계가 가능한 통합 인프라 전략을 강조했다. 김 팀장은 “BIS와 함께 제시한 ‘프로젝트 아고라’는 은행 예금토큰이 상호운용성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글로벌 지급·결제 효율을 높이는 방향을 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4~6월 7개 은행과 함께 약 8만 명이 참여한 실거래 실험 결과도 공개했다. 실험에서는 편의점·커피숍·온라인 쇼핑·배달앱 등에서 예금토큰 결제가 실제로 이뤄졌고, 서울·대구·부산 신라대와 협력한 디지털 바우처 프로그래밍 실증도 포함됐다.
한국은행은 내년 후속 실거래 테스트, 디지털 바우처의 국고금 적용 시범사업, 스테이블코인 정산·환급 체계 마련 등 후속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 Progmat CSO “글로벌 연계·윤리·장기 규제…3요소 정렬이 생태계의 성패 결정”
두 번째 발표에서 유스케 타케자와 (Yusuke Takezawa) Progmat CSO는 글로벌 토큰화 프로젝트 경험을 토대로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이 직면한 과제를 분석했다.
그는 “새 기술 기반 인프라는 기존 제도에 단기적으로 맞추기보다 장기 규제 비전이 먼저 정립돼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타케자와 CSO는 일본이 초기 법제화 당시 산업 미성숙으로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복잡성이 증가한 점을 반면교사로 제시하며 “한국은 글로벌 사례가 충분한 만큼 방향성을 먼저 설정하고 그 위에 규제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단일 국가 내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며 한국–일본–유럽–미국의 상호운용성과 글로벌 생태계 연결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기업 윤리에 대해서도 “단기 이익 중심의 전략은 산업 전체를 소모시키며 장기 생태계 목표를 기준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패널토론 “장외 스테이블코인 거래 모니터링은 가장 큰 과제”
토론은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진행으로 김재진 DAXA 상임부회장, 유창보 NH농협은행 블록체인팀장이 참여한 가운데 이어졌다.
김재진 부회장은 준비자산 요건을 핵심 과제로 꼽으며 “안정적 1:1 가치를 유지하려면 미국처럼 단기 국채 중심의 구성안이 필요하지만, 한국은 단기 국채 발행이 제한적이어서 국가재정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이동이 현행 외국환거래법 규율 밖에 있어 규제 우회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장외·음지 거래에 대한 모니터링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장내 투명 거래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창보 NH농협은행 팀장은 글로벌 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금융기관 간 협업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되고 있다”며 “싱가포르 통화청(MAS)의 ‘Project Guardian’ 및 확장 프로젝트인 ‘블룸(Project Guardian – Bloom)’처럼 은행·민간·규제기관이 함께 테스트할 수 있는 개방적 실험체계가 국내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팀장은 규제 공백 장기화로 인해 시장과 기술이 해외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그는 “국내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들이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형 환경이 조성돼야 국제 프로젝트와 연계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널토론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Progmat의 타케자와 CSO는 한국 시장의 특성과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보탰다. 그는 “한국은 외환 규제가 존재하는 만큼 스테이블코인의 무제한 장외 이동을 그대로 두기 어렵다”며 “장외 거래를 줄이고 장내 규제시장으로 이동시키는 유인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한 글로벌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갖춘 다자 협력 구조가 마련된다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아시아·글로벌 표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