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프로젝트 ‘블록다그(BlockDAG)’의 창업자 구르한 키질로즈(Gurhan Kiziloz)가 전통적인 경영 방식을 버리고 ‘전시(wartime) 체제’를 선언했다. 생존이 걸린 경쟁 환경 속에서 기존 경영진을 전면 교체하고, 창업자 중심의 결정 구조를 강화한 것이다.
키질로즈는 블록다그의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경영진을 해임하며, 이번 결정이 단순한 비전 충돌이나 성격 차이가 아니라 철저한 ‘전략적 전환’임을 분명히 했다. 이 프로젝트는 방향성만 옳다고 성공할 수 없는 치열한 레이어1 블록체인 시장에서, ‘속도와 집중력’을 경쟁력으로 삼기 위한 구조 개편에 나섰다.
블록다그는 방향성 자체는 분명한 프로젝트다. 기존 블록체인이 사용하는 직선형 체인이 아닌 방향성 비순환 그래프(DAG, Directed Acyclic Graph) 구조를 기반으로 병렬 처리를 구현한다. 보안성과 확장성을 조화롭게 가져가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더리움(ETH)은 여전히 개발자들의 디폴트 플랫폼으로 굳건하고, 솔라나(SOL)는 속도에 집중하는 프로젝트를 빨아들이고 있다. 규제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시드 자금은 한정적이다. 이런 가운데 블록다그는 외부 파트너와의 관계 구축, 조율과 합의 중심의 ‘평시 조직’으로 운영돼 왔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전 경영진은 확실히 신뢰를 받고 있었지만, 실행 속도가 뒤처졌고, 그것이 결국 위험이라는 판단으로 이어졌다.
키질로즈는 이 같은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창업자 중심의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구조로 전환했다. 길고 복잡한 회의와 합의 과정을 줄이고, 빠른 결정과 집행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키질로즈는 과거에도 유사한 결정을 통해 성과를 내본 경험이 있다. 그는 온라인 게임 기업 ‘넥서스 인터내셔널(Nexus International)’을 외부 투자 한 푼 없이 연매출 약 10억 달러(약 1조 4,685억 원)까지 키워낸 바 있다. 당시에도 그는 신흥 시장 공략, 빠른 방향 전환, 자원 집중 투자 등 ‘전시 리더십’을 발휘했다. 특히 2025년 브라질이 도박 시장을 개방했을 때, 넥서스는 며칠 만에 진출한 반면 경쟁사들은 몇 주를 허비했다.
이번 블록다그의 조직 개편 역시 키질로즈가 당시의 성공 방식을 가져온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합의보다 실천, 익숙한 본사 중심 체계보다 전장 중심의 워룸 체제를 택했다. 사실상 이사회 대신 창업자 독단 구조로의 전환인 셈이다.
레이어1 블록체인 시장의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이더리움은 강고한 개발자 생태계를, 솔라나는 속도와 사용자 경험을 무기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그 외 프로젝트는 대부분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조용히 소멸’하고 있는 상황이다.
블록다그는 DAG 기반이라는 차별성, 그리고 보안성과 병렬성을 겸비한 기술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생태계 성장, 개발자 확보, 실행 속도 등은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키질로즈는 기존의 ‘프로세스 중심’ 조직을 해체하고, 전략과 실행 간 거리를 최대한 줄였다.
물론 전시 체제가 만능은 아니다. 지나친 권한 집중은 창업자의 오판 리스크를 키운다. 내부 반론이 사라지고,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실제로 이번 경영진 교체는 블록다그 커뮤니티와 일부 협업 기업들 사이에서 ‘불안정 신호’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러나 키질로즈는 블록다그의 가장 큰 리스크가 ‘리더십 변화’가 아니라 ‘관성’이라고 본 듯하다. 실행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방치하다 망하는 프로젝트를 그는 이미 충분히 보아왔다. 정치적 완급보다도 속도와 집중이 더 중요한 구간이라는 판단에 따른 과감한 리셋이다.
벤 호로위츠가 소개한 ‘전시 CEO’ 개념처럼, 지금의 키질로즈는 회장(chairman)이 아닌 ‘사령관’(general)을 자처하고 있다. 책임을 나누는 대신, 오롯이 본인이 직접 짊어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크립토 업계에서 많은 창업자들이 이사회와 자문단 뒤에 숨는 것과 대비된다.
이 전략이 블록다그를 살아남게 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키질로즈는 최소한 하나는 분명히 했다. 이 전쟁은 합의가 아닌 결단으로 치를 것이며, 평시의 안일은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컨대, 암호화폐 전쟁터에서 원하는 건 외교관이 아니라 승리하는 장군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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