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분석] 확장성을 얻으면 탈중앙성을 잃는다… BIS가 짚은 블록체인 ‘분열의 경제학’

| 알파리포트

퍼미션리스(공개형) 블록체인은 중앙 중개자에 대한 의존을 줄이겠다는 약속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국제결제은행(BIS)이 7월 6일 발표한 불리틴 126호는 정반대의 현실을 지적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이후 분산원장(DLT) 위의 활동은 결제·디파이·디지털자산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됐지만, 확장 가능한 단일 인프라로 수렴하는 대신 수많은 네트워크로 쪼개져 유동성을 분산시키고 네트워크 효과를 희석시켰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분열이 기술적 우연이 아니라 합의 메커니즘에 내재한 경제적 트레이드오프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합의는 ‘토큰 인센티브 균형’이다

블록체인은 서로 알지도 신뢰하지도 않는 검증자(validator)들이 유지하는 추가 전용(append-only) 공유 원장이다. 퍼미션리스 환경에서는 누구나 블록 검증·제안을 시도할 수 있으므로, 인센티브가 검증자의 사적 보상과 ‘일관된 원장’이라는 공공재를 정렬시켜야 한다. 보고서는 검증자가 운영 비용뿐 아니라 다른 검증자의 참여에 의존하는 데서 오는 조율 리스크(coordination risk)까지 보상받아야 정직한 균형이 유지된다고 설명한다.

비트코인 채굴자는 에너지·하드웨어 비용을 들여 블록 보상을 얻고(작업증명), 이더리움 검증자는 네이티브 토큰(이더)을 예치한 뒤 규칙 위반 시 슬래싱(예치금 몰수) 위험을 감수한다(지분증명). 검증자 집합이 지나치게 크면 조율 비용이 오르고, 지나치게 집중되면 교란·통제 위험이 커진다. 이 경제적 렌즈로 보면 블록체인 합의는 단일한 기술 규격이 아니라 토큰 인센티브가 지탱하는 균형들의 스펙트럼으로 이해된다.

트릴레마 — 셋 중 둘

이 균형의 핵심에 이른바 블록체인 트릴레마가 있다. 탈중앙화·보안·확장성 사이의 상충 관계다. 많은 검증자가 독립적으로 블록을 검증·확정하면 탈중앙화와 보안이 강화되지만 통신·검증 비용이 늘어 처리량이 제한되고 지연(latency)이 커진다. 작업증명·지분증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검증자 수를 줄이거나 하드웨어 요건을 높여 처리량과 속도를 끌어올리면 참여가 좁아지고 탈중앙성이 약해진다. 위임지분증명(DPoS·예: 트론)이나 지분권위증명(PoSA·예: BNB 스마트체인)이 그 사례다.

합의의 트릴레마 — 작업증명·지분증명(붉은색)은 넓은 검증자 참여로 탈중앙화·보안 쪽에 치우치나 확장성에 제약이 있고, 위임지분증명·지분권위증명(파란색)은 검증자 집합을 줄여 처리량·속도를 얻는 대신 탈중앙성이 약해진다. 위치는 일반적 경향을 나타내며 구현별로 달라질 수 있다. 자료: BIS Bulletin No 126 Graph 1(Buterin 2021; BIS 2022 기반), 토큰포스트 재구성

보안 고려는 이 상충을 더 강화한다. 블록체인이 지키는 가치가 커질수록 네트워크를 훼손하는 데 드는 ‘공격 비용’도 함께 올라야 악의적 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 그런데 퍼미션리스 환경에서 이 비용은 수수료·혼잡 지대(congestion rent)·토큰 희석의 형태로 이용자가 부담한다. 즉 더 높은 보안 기준은 더 빡빡한 처리 용량 제약을 동반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진단이다.

만능은 없다 — L1 합의의 다양성

이 트레이드오프 때문에 L1(기반 네트워크)들은 서로 다른 합의 메커니즘으로 공존한다. 비트코인·이더리움 같은 초기 체인은 넓은 검증자 참여로 탈중앙화·보안을 우선했고, 그 대가로 확장성이 제한된다. 희소한 블록 공간 수요가 늘면 혼잡이 심해지고 수수료가 뛰어 가격에 민감한 이용자가 밀려난다. 반면 신생 L1들은 검증자 집합을 줄이거나 하드웨어 요건을 높여 처리량을 끌어올리는, 더 중앙화된 설계를 택했다.

L1 합의 메커니즘의 스펙트럼 — ‘하나의 정답’은 없으며, 각 설계는 트릴레마 위 서로 다른 지점을 택한 경제적 균형이다.

수평·수직으로 갈라지는 유동성

네트워크의 다양성은 이용자와 유동성을 서로 격리된 사일로로 분리한다. 이더리움이 디파이에서 우위를 지키는 가운데 신생 L1들이 수평적(horizontal)으로 확장됐다. 그 과정에서 2022년 급성장 후 붕괴한 테라처럼 사라진 체인도, 팬텀처럼 사용이 줄어든 체인도 있었다. 동시에 일부 네트워크는 실행·정산·데이터 가용성·시퀀싱을 특화된 계층으로 분리하는 수직적(vertical) 모듈러 아키텍처로 이동했다. L2는 트랜잭션을 오프체인에서 처리한 뒤 결과를 기반 L1에 기록해 정산·데이터 가용성을 확보한다.

분열의 두 축 — 다수 L1로의 수평 확장(A)과 실행·시퀀싱·데이터가용성·정산을 계층으로 쪼개는 수직 모듈화(B). 모듈성은 트레이드오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계층 간에 재분배하며, 새로운 거버넌스·상호운용성 과제를 낳는다. 자료: BIS Bulletin No 126 Graph 2

완화책의 역설 — 다시 불려온 중개자

분열이 심화되자 자산·유동성·애플리케이션을 체인 간에 잇는 메커니즘 수요가 커졌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 완화책들이 분열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며, 저마다 새로운 신뢰 가정·거버넌스·운영 의존성을 대가로 리스크를 이전시킬 뿐이라고 못박는다.

첫째, 브리지는 한 네트워크에서 자산을 잠그고 다른 네트워크에 대응 표현을 발행(민팅)해 가치를 옮긴다. 편리하지만 리스크를 집중시킨다. 키 탈취, 위조 메시지, 스마트컨트랙트 버그는 대형 손실로 이어졌는데, 2022년 3월 로닌 네트워크 해킹의 6억 2,500만 달러가 대표 사례다. 둘째, 네이티브 멀티체인 발행은 스테이블코인 같은 대형 발행자가 여러 체인에 동명(同名) 토큰을 각각 발행하는 방식이다. 이름은 같아도 체인 간 전송이 불가능하고 지갑 주소가 다르며 각기 별도 유동성 풀에서 거래돼, 오히려 분열을 심화시키고 가격차 해소를 크로스체인 차익거래자에 의존하게 만든다.

셋째, 공유 계층은 여러 롤업에 공통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동 지분 풀로 여러 L2를 뒷받침하는 공유 보안, 실행 검증을 위한 공유 데이터가용성, 롤업 간 거래 순서를 정하는 공유 시퀀서 등이다. 효율을 높이고 지대 추구 여지를 줄이지만, 소수 구성요소에 거버넌스·운영 리스크를 집중시켜 생태계 내에서 시스템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다. 넷째, 상호운용성 프로토콜은 자산을 옮기는 대신 검증된 메시지·증명으로 체인 간 통신을 가능케 한다. 자산을 원래 체인에 두어 중복·분열을 줄이지만, 온체인 검증으로 최소화해야 할 새로운 신뢰 가정을 들여온다. 보고서는 특히 이 상호운용성 프로토콜의 사용이 급증했다고 전했다.

퍼미션리스 블록체인은 FMI가 될 수 있는가

보고서의 결론은 신중하다. 퍼미션리스 블록체인은 범용 금융 인프라를 지향하지만, 현실에서는 구속력 있는 경제적 제약이 이들을 특화와 분열로 몰아간다. 합의의 트레이드오프는 단일 통합 인프라로의 수렴이 아니라 다수의 균형을 낳고, 분열을 다시 잇겠다는 완화책은 흔히 중개자와 새로운 의존성을 재도입한다. 이 역학은 퍼미션리스 체인이 추가적 거버넌스·감독 없이 자연스럽게 금융시장인프라(FMI)로 진화할 수 있는 정도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정책 과제는 세 갈래다. 운영·사이버 회복력 — 다양한 합의·인센티브·거버넌스가 리스크 평가와 사고 대응·복구를 복잡하게 만들며, 공통 미들웨어로의 통합은 분열을 줄이는 대신 소수 공유 서비스가 시스템의 결정적 실패지점이 될 수 있다. 규제 경계와 감독 — 공유 시퀀서, 데이터가용성 계층, 크로스체인 메시징은 점점 전통 시장 인프라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므로, 규모가 커지면 FMI에 준하는 거버넌스·회복력 기준·감독이 필요할 수 있다. 경쟁 대 표준화 — 개방적·상호운용적 표준은 혁신과 경쟁을 보전하면서 분열을 줄일 수 있으나, 활동이 여러 관할권과 인프라에 걸치는 만큼 규제 차익과 운영 리스크를 막기 위한 국경 간 조율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탈중앙화의 명분은 신뢰가 제한되고 중앙 중개자 의존이 값비싸거나 비현실적인 환경에서 가장 강하다. 그러나 대규모에서 견고한 합의 균형을 지속하려면 인센티브의 정교한 조정, 투명한 거버넌스, 실효적 운영 통제가 필요하다. 보고서는 특히 시스템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는 공유 구성요소에 감독의 초점을 둘 것을 주문했다.

한국 시장에의 함의

이 진단은 국내에도 직접 닿는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복수의 체인에 네이티브로 발행되는 경로를 택한다면, 보고서가 경고한 바로 그 분열—동명이지만 전송 불가능한 토큰, 갈라진 유동성 풀, 차익거래 의존—이 원화 유동성에서 재현될 수 있다. 발행 체인 전략과 상호운용성 설계를 초기에 정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또한 공유 시퀀서·브리지처럼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공유 구성요소’에 대한 감독 프레임을 어떻게 설계할지는, 토큰증권·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진행 중인 한국 규제당국에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참고로 이번 보고서에는 한국계 연구자(Sang Hyuk Lim)가 공저자로 참여했으며, BIS 경제자문역 신현송(Hyun Song Shin)의 관련 연구가 인용됐다.

편집자 주

- BIS 불리틴은 저자 개인의 견해로, BIS나 회원 중앙은행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 본문의 그림 1(트릴레마)과 그림 2(분열 구조)는 개념도로, 보고서 Graph 1·2의 취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Graph 2·3의 시계열(총예치가치·프로토콜 사용액) 수치는 원문에 구체 수치가 명시돼 있지 않아 임의로 재현하지 않았다.

- 로닌 해킹 피해액(6억 2,500만 달러, 2022년 3월)은 보고서 기재값을 따랐다.

‘한국 시장에의 함의’ 단락은 보고서 내용이 아닌 토큰포스트의 해석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경로·국내 제도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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