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Z, 다크풀 기반 DEX 제안…프라이버시와 제도권 향한 크립토 진화 신호

| 김민준 기자

바이낸스 공동 창업자인 챤펑 자오(Changpeng “CZ” Zhao)가 최근 제안한 다크풀 기반 영구 선물 DEX(탈중앙화거래소) 구상은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서 현재 Web3 인프라의 근본적인 한계를 짚는 신호탄이다. 공정한 시장 구조와 대규모 거래 보안이 점점 중요해지는 가운데, 이 제안은 현재 크립토 생태계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미성숙한지를 반영한다.

최근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에서 발생한 약 1억 달러(약 1,390억 원) 규모의 청산 사건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해당 거래는 온체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추적됐고, 공격적으로 타깃이 되었다는 의혹 속에 투명성의 역설이 떠올랐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같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로 인해 대형 투자자들은 프론트러닝, 카피트레이딩, 지갑 추적 등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다. 기존 금융의 다크풀이 이러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암호화폐 시장은 이제 초기 투자자 중심에서 벗어나, 규제 기관의 인가를 받은 펀드부터 기업 자산운용부에 이르기까지 기관 중심 생태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거래는 OTC(장외거래) 데스크, DEX 집계기, P2P 플랫폼 등 구식 도구에 의존하고 있고, 이들 방식은 미끄러짐(slippage) 및 비효율성을 피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대형 기관은 더 정교하고 안정적인 체계를 원하지만, 크립토 생태계는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문제는 사생활 보호다. 프로젝트 창업자나 고래, 펀드 지갑 등을 추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요 계정의 이체 이력 하나하나가 시장에 신호를 주고, 이는 지나친 가시성으로 인해 매수 또는 매도 압력을 유도한다. 리테일 투자자에겐 유익해 보일 수 있지만, 기관과 고액 투자자들에게는 결정적 장애 요소다.

CZ가 제안한 다크풀 DEX는 이 같은 시장 요구에 응답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은 제로 지식 증명(ZKP)이나 다자간 컴퓨팅(MPC) 등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을 도입해 거래 체결 전까지는 주문 세부사항을 감추는 방식이다. MEV 봇의 공격을 막고, 거래 조작 가능성을 줄이며, 대규모 거래에 안정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실용적 접근이다.

물론, 전면적 비가시성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규제 당국의 반발은 물론, 투명성을 요구하는 이용자들과의 마찰도 불가피하다. 거래를 은폐하면서도 시장 책임성과 규제 준수를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출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번 CZ의 제안이 실제로 구현될지는 미지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현재 크립토 시장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대형 자금이 안심하고 진입할 수 있는 환경, 신뢰할 수 있는 퇴로(exit), 고효율 거래 인프라 없이는 암호화폐 시장은 더 이상 전진하기 어렵다.

Web3의 철학이었던 모든 거래의 공개성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것이 만능 원칙이 되어선 안 된다. 성장하는 산업은 새로운 문법을 필요로 한다. 이념보다 효율과 현실이 우선시돼야 할 시점이다.

궁극적으로 CZ의 다크풀 DEX 구상은 단순한 반응이 아닌, 급변하는 시장의 수요를 진단한 해법이다. 암호화폐가 진정으로 메인스트림 자산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거래 프라이버시, 정교한 보안 수단, 그리고 투명성과 노출 간의 분명한 경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제 Web3는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그에 걸맞은 인프라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