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IMF 조건 수용…비트코인 법정통화 지위 해제

| 손정환 기자

엘살바도르가 한때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암호화폐 실험국으로 떠올랐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으면서 그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최근 IMF 보고서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정부는 작년 12월 이후 비트코인(BTC) 매입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비트코인을 계속 매입 중이라고 밝혀온 것과는 배치되는 사실로, 암호화폐 정책의 급격한 선회를 의미한다.

엘살바도르는 2021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첫 국가로 알려지며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Nayib Bukele)의 주도로 적극적인 비트코인 도입 정책을 추진해왔다. 2022년에는 하루에 1비트코인을 구매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하며 ‘국가 단위의 채굴 및 매입’을 아예 시스템화했다. 이런 행보는 비트코인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엘살바도르를 전 세계 암호화폐의 테스트베드로 만들었다.

하지만 2025년 2월, IMF로부터 약 14억 달러(약 1조 9,460억 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IMF는 지원 조건으로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 및 거래를 제한할 것을 요구했고, 공식적으로는 반발하던 정부 역시 비공식적으로는 이를 이행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IMF는 7월 15일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서 “엘살바도르 정부는 2024년 12월 이후 새로운 비트코인 매입이 없었다”고 못 박았다.

이뿐만 아니라, 비트코인의 법정통화 지위도 2025년 1월부로 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제사회와의 경제 협력을 위한 ‘정책 현실화’ 조치로 보인다. 특히 정부 운영 비트코인 지갑인 '치보 월렛(Chivo Wallet)'의 민영화가 이달 말까지 추진되고 있으며, 비트코인 신탁기금(Fidebitcoin) 폐지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비트코인 실험에서 손을 떼고 전통적인 경제 안정을 택한 단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엘살바도르의 이러한 움직임은 경제 현실감각 회복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암호화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실험이 현실의 벽 앞에서 무너졌음을 방증한다. IMF의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대내외 신뢰 회복에 나선 이번 정책 전환은 암호화폐 산업 전반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혁신도 중요하지만, 거시경제 안정이라는 기반이 전제돼야 한다는 교훈이다.

한편, 대통령 부켈레는 여전히 비트코인 지지자로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실질적인 시장 개입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엘살바도르가 어느 선까지 정책 중립을 유지할지, 혹은 다시 암호화폐로 선회할 여지가 남아 있는지는 향후 국제 관계와 경제 성과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