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을 기반으로 한 서구권 최대 다크넷 마켓 중 하나로 불리던 아바커스 마켓(Abacus Market)이 최근 돌연 사라졌다. 운영 4년 만에 나타난 이 돌발 행보에 업계 전문가들과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대규모 엑시트 사기(exit scam)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 기업 TRM 랩스에 따르면, 아바커스 마켓은 2025년 7월 초 갑작스럽게 모든 서비스를 중단하고 클리어넷 미러와 연결된 인프라를 통째로 폐쇄했다. 이 사건은 관련 공지조차 없이 벌어져 이용자들을 큰 혼란에 빠뜨렸다.
아바커스는 2021년 ‘알파벳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으며, 이후 개명과 함께 빠르게 성장해 다크넷 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비트코인과 모네로(XMR)를 모두 지원하고, 중앙 집중식 입금 지갑 및 멀티시그 방식의 운영 모델을 채택해 신뢰를 구축해왔다.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시장을 겨냥한 문화 맞춤형 운영이 시장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난 6월부터 출금 지연에 대한 사용자 불만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의혹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관리자 ‘비토(Vito)’는 법 집행기관에 의해 폐쇄된 아르케타입 마켓의 사용자 유입과 분산서비스공격(디도스)으로 인한 시스템 부하를 원인으로 들었지만, 사용자 다수는 이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실제로 6월 초 일 평균 1,400건에 달하던 입금 거래는 7월 초에는 100건 수준으로 급감했고, 입금 금액도 일 평균 23만 달러(약 3억 1,970만 원)에서 1만 3,000달러(약 1,807만 원)로 폭락했다.
TRM 랩스는 이는 다크넷 마켓 특유의 전형적인 ‘엑시트 사기’ 전조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바커스에서 처리된 누적 거래 규모는 약 1억 달러(약 1,390억 원)에 달하며, 특히 2024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70%를 웃돌 정도로 성장했다.
그간 다크웹 생태계에서는 시장이 특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운영자가 정부 단속보다 자금 회수와 익명성이 보장되는 자발적 폐쇄를 선택하는 경향이 반복돼 왔다. 아바커스의 전격적인 사라짐도 이 같은 패턴의 연장선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크웹 포럼 ‘드레드(Dread)’ 운영자인 ‘허그버터(Hugbunter)’ 또한 “정부가 몰래 압수작업을 벌였을 가능성은 낮다”며, 아바커스는 계획적인 종료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과거 이볼루션(Evolution), 아고라(Agora) 등 유사한 사례의 운영자도 대부분 단속을 피한 채 사라졌던 전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TRM 랩스에 따르면 서구권 마켓이 잇단 폐쇄와 사기로 신뢰를 잃은 반면, 2022년 히드라 마켓(Hydra)이 폐쇄된 이후 러시아어 기반 다크넷 시장은 더욱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기준 전 세계 다크웹 내 약물 시장 매출 중 97% 이상이 이들 플랫폼에서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를 통해 다크웹의 영향력이 여전히 다국적이며, 규제가 어려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실상을 드러낸다.
아바커스 마켓의 유령 같은 퇴장은 다크넷 경제의 취약성과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동시에, 글로벌 규제 공백과 암호화폐 기반 마켓의 익명성이라는 구조적 한계 또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