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최대 호출 서비스 기업인 그랩이 필리핀 이용자 대상으로 암호화폐 지갑 충전 기능을 공식 도입했다. 이번 조치로 필리핀 이용자들은 지금부터 그랩페이(GrabPay) 지갑에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USD코인(USDC), 테더(USDT) 등 대표적인 암호화폐를 활용해 간편하게 충전할 수 있게 됐다.
해당 서비스는 작년 싱가포르에서 파일럿 운영을 거쳐 실제 수요와 효과가 입증된 후 필리핀으로 확대됐다. 필리핀은 약 1억 1,200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글로벌에서도 손꼽히는 암호화폐 사용자층이 활발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비스 확장은 암호화폐의 대중화를 한층 앞당길 수 있는 포석으로 평가된다.
이번 사업은 그랩이 디지털 결제 기업 트리플에이(Triple-A)와 필리핀 현지 암호화폐 거래소 피닥스(PDAX)와 제휴를 맺고 공동으로 진행한다. 트리플에이는 싱가포르 금융감독청(MAS)과 미국 금융범죄단속반(FinCEN)으로부터, PDAX는 필리핀 중앙은행(BSP)으로부터 각각 정식 인가를 받은 기관이다. 규제 체계 아래 이뤄지는 협업이기에 보안과 신뢰 측면에서도 안정성을 확보했다.
그랩 측은 이 기능이 단순한 기술 진보에 그치지 않고 포용적 금융 서비스 확대라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은 전통 금융 시스템 접근성이 낮은 인구 비중이 높아 조건만 갖춰진다면 암호화폐가 실생활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도 실물 경제에서 사용처가 제한적이었던 이용자들이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지갑 충전 → 그랩페이 결제’ 플로우를 모바일 앱 내에서 손쉽게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트리플에이의 에릭 바비에(Eric Barbier) 최고경영자(CEO)는 “싱가포르에서 암호화폐 충전 서비스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됐으며, 필리핀도 그 준비가 되어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랩 필리핀 지사 부사장 CJ 락시칸(CJ Lacsican)은 “은행 계좌가 없는 사용자도 암호화폐만으로 생활 결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서비스의 실질적 혜택과 접근성 개선에 대해 역설했다.
이용 방식은 간단하다. 그랩 앱에서 ‘암호화폐’를 선택해 BTC, ETH, USDC, USDT 가운데 원하는 자산과 네트워크를 고르고 충전 금액을 필리핀 페소로 입력한 뒤 송금 주소를 받아 암호화폐를 전송하면 된다. 전송이 완료되면 해당 금액이 즉시 그랩페이 지갑으로 반영된다.
이번 조치는 암호화폐가 실제 실물 결제에 적용되는 사례로서 의미가 크다. 그랩이 지닌 사용자 기반과 실생활 밀착형 서비스 진출 범위를 고려할 때, 유사한 시도가 국내외 여러 사업자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암호화폐가 더 이상 거래소에만 머무르지 않고 점차 생활 속으로 스며드는 흐름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