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으로 시민권 취득?…암호화폐 기반 이민, 바누아투·엘살바도르 주목

| 서지우 기자

전 세계로의 이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2025년, 암호화폐를 활용한 시민권 또는 거주권 취득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테더(USDT) 등을 보유한 투자자라면 이제 전통적인 법정화폐를 거치지 않고도 금전적 자유와 글로벌 거주권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셈이다. 실제로 바누아투, 도미니카, 세인트루시아, 포르투갈, 엘살바도르 등은 암호화폐 기반 투자에 우호적인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빠르게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인 바누아투는 약 한 달 만에 여권을 받을 수 있는 속도가 특징이다. 단독 신청자의 경우 최소 13만 달러(약 1억 8,070만 원), 4인 가족 기준 18만 달러(약 2억 5,020만 원)을 바누아투의 개발지원기금(DSP)에 기부하면 시민권이 발급된다. 해당 프로그램은 공식적으로 암호화폐를 직접 받진 않지만, 라이선스를 보유한 대행사들을 통해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 형태의 자산을 먼저 수령하고, 이를 현지 화폐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대행사 중 일부는 총 투자 금액 11만 5,000달러~13만 달러(약 1억 6,000만 원~1억 8,070만 원)를 비트코인으로 직접 결제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다.

세인트루시아와 도미니카도 암호화폐 기반의 투자 이민에 적극적인 카리브 국가들이다. 세인트루시아는 24만 달러(약 3억 3,360만 원) 기부 또는 30만 달러(약 4억 1,700만 원) 이상 부동산 투자를 요구하며, 도미니카는 최소 20만 달러(약 2억 7,800만 원) 이상을 경제다변화기금에 기부해야 한다. 신청 절차는 전면 비대면으로 진행되며, 가상자산은 공인 기관이 먼저 수취하고 현지 화폐로 환전한 후 정부에 전달되는 식이다. 이를 통해 투자자는 여권 취득 전 과정에 암호화폐를 활용할 수 있으며, 피신청인 자격으로 가족 전체가 포함되는 것 역시 장점이다. 다만 최근 카리브 지역 시민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법적 심사가 강화된 만큼, 디지털 자산 기반 투자자의 사전 준비가 중요하다.

유럽 지역에선 포르투갈이 대표적인 암호화폐 친화 국가로 꼽힌다. 이곳의 골든비자 제도는 기존 부동산 중심에서 투자 펀드와 과학 연구, 스타트업 설립 등으로 축이 이동하고 있으며, 50만 유로(약 7억 원) 투자가 기준이 된다. 포르투갈은 법적으로 암호화폐 직접 투자는 불가능하지만 개인의 비트코인을 현금화한 자산을 기반으로 한 투자 접근성을 넓힌 펀드 상품들이 증가하고 있다. 예컨대 블록체인 스타트업 중심 벤처펀드나, 최대 35%를 BTC, ETF로 구성한 이른바 ‘골든 크립토 펀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투자구조는 정부의 비자 요건을 충족하며, 장기적으로는 EU 시민권까지 연결되는 경로를 마련해 준다.

다른 국가보다 더욱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한 곳은 단연 엘살바도르다. 이 나라는 2023년 12월 테더와 함께 ‘프리덤 비자’를 출범시켜, 연간 1,000명 한정으로 비트코인 또는 USDT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 투자 시 직접 시민권을 부여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사전 신청금을 포함한 모든 절차는 오직 암호화폐로만 이뤄지며, 중개기관 없이 디지털 자산으로 국가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는 구조다. 약 6주 내 1차 승인이 완료되고, 몇 개월 후 시민권이 나오는 이 프로그램은 ‘법정화폐 없는 여권’을 추구하는 크립토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025년 현재, 암호화폐를 활용해 시민권이나 거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국가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투자금 기준은 10만 달러(약 1억 3,900만 원)부터 100만 달러(약 13억 9,000만 원)까지 다양하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암호화폐를 받을 수 있는지는 국가 정책과 기관 역량에 따라 갈린다. 글로벌 이동성과 개인정보 보호, 탈중앙화 자산의 법적 거주권 연계라는 교차지점에서, 이들 프로그램은 디지털 시대 투자자들의 핵심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