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디지털 자산에 대해 전례 없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이를 트럼프 행정부 시대의 주요 정책 전환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이 미국 금융 시스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투자자들이 아직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트와이즈(Bitwise) 최고투자책임자 매트 후건(Matt Hougan)은 최근 발언에서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미국 내에서 디지털 자산에 우호적인 규제 환경이 형성되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며 이같은 움직임이 암호화폐 도입 가속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SEC가 최근 발표한 프로젝트 크립토(Project Crypto)는 백악관 디지털자산 실무그룹의 논의에 따라 시작된 규제 혁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명확하고 일관된 규제 프레임워크 마련을 목표로 한다.
특히 이번 주에는 리퀴드 스테이킹(liquid staking) 관련 규제 해석이 주목을 받았다. SEC는 일부 리퀴드 스테이킹 활동이 증권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8월 5일 발표된 직원 성명서에 따르면 “활동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증권 발행 및 판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SEC 관할에서 벗어난다”고 설명했다. 리퀴드 스테이킹이란, 특정 프로토콜을 통해 암호화폐를 스테이킹하고 이에 상응하는 유동 스테이킹 토큰을 발행받는 구조를 의미한다.
SEC 의장 폴 앳킨스(Paul Atkins)는 “이번 안내는 어떤 암호화폐 활동이 SEC 규제 범위를 벗어나는지를 명확히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디파이 전문 데이터업체 디파이라마(DefiLlama)에 따르면 현재 리퀴드 스테이킹 시장 규모는 약 570억 달러(약 79조 2,300억 원)에 달하며, 그 중 이더리움 기반 리퀴드 스테이킹이 510억 달러(약 70조 8,900억 원)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 완화는 암호화폐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매트 후건은 “SEC의 친(親) 암호화폐 노선이 시장 가격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는 폴 앳킨스 의장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에서 블록체인을 미래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꼽은 발언을 언급하며 “이런 발언이 SEC 의장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시장은 여전히 이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후건은 이어 “내가 본 가장 낙관적인 암호화폐 관련 문서는 트위터나 포럼에서 떠도는 글이 아니다. SEC 의장이 쓴 공식 문서였다”는 말로 규제 환경 변화의 무게감을 부각시켰다. 폴 앳킨스 또한 지난 7월 CNBC 인터뷰에서 “토큰화는 중요한 기술 혁신”이라고 밝히며 “이제는 집행 위주의 규제(regulation through enforcement) 시대를 끝낼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SEC가 추진 중인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미국 내 기관 투자자들의 암호화폐 수용 증가와, 업계의 상장(IPO) 흐름 가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 전환을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닌, 미국 금융 시스템 내에서 디지털 자산이 통합될 수 있는 기념비적 진전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