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사각지대를 신속히 메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유럽연합(EU)의 '암호자산시장 규제안(MiCA)' 외부에서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 미비가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라가르드 총재는 ECB가 주최한 제9회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 연례회의 연설문을 통해 "EU 내부에 있는 발행사와 EU 외부 기업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경우, 규제 공백이 생길 수 있다"며 EU 입법자들이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예외 없이 신뢰할 수 있는 상환 체계와 완전한 자산 담보를 갖춰야 하며, 그러한 장치 없이 유럽 시장에 진입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EU 투자자들이 항상 액면가(par value)로 코인을 환전할 수 있어야 하며, 발행사는 이를 위해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가르드는 “만약 시장에 불안이 발생해 ‘뱅크런’이 벌어진다면, 투자자들은 가장 강력한 보호장치를 갖춘 지역, 즉 MiCA 기반 규제가 적용되는 EU에서 먼저 상환받길 원할 것”이라며, “하지만 EU에 보관된 준비금만으로는 동시에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미 달러나 유로와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Peg)해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암호화폐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왔으며, 각국은 이제 이를 기존 금융 체제 내 편입할 수 있는 규제 수단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ECB는 디지털 유로 도입을 다년간 추진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밀어붙인 미국 내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글로벌 규제 주도권 경쟁을 촉발하며 새로운 압박 요인으로 떠올랐다. 실제로 미 의회는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을 위한 법적 틀을 마련했고, 이는 달러 연동형 코인 발행사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ECB 집행이사 피에로 치폴로네는 지난 4월 “미국의 정책은 단순히 수수료나 데이터 이탈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유럽 내 예금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국제 결제에서 달러의 영향력만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유로화의 역할 약화로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한편, 미국과 유럽이 규제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중국도 위안화 연동형 스테이블코인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8월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디지털 위안 발행의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수단으로 정부 주도 스테이블코인을 검토 중이다. 다만 공식적인 추진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며, 달러·유로·위안화 등 주요 통화의 디지털 확장성에 대한 수 싸움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향후 글로벌 결제 시스템 재편과 직결될 수 있는 사안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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