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상화폐 거래를 허용하는 시범 제도를 도입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의 디지털 자산 시장 규제 정책에 중대한 전환점이 마련됐다.
베트남 당국은 2025년 9월 9일, 가상화폐 거래 및 발행에 대한 시범 운영 관련 결의안을 즉시 발효했다. 이 조치는 호 득 폭 베트남 부총리의 서명을 통해 공식화됐다. 이번 조치에 따라 앞으로 5년 동안 베트남 기업들은 정부의 인가를 받은 뒤에 한해 가상화폐 거래소 설립과 암호화폐 발행이 가능해지며,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이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시범 사업에 참여하려는 기업에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거래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최소 10조 동(한화 약 5,260억 원)의 자본금을 갖추어야 하며, 이 중 65% 이상은 기관투자자가 출자해야 한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의 소유 지분은 49% 이하로 제한된다. 이는 해외 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막고, 국내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또한 가상화폐의 거래, 발행, 결제는 모두 베트남 자국 통화인 동화로만 이뤄져야 하며, 법정통화나 주식 등 실제 자산으로 뒷받침되는 형태의 암호화폐는 발행이 금지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가격이 고정된 암호화폐)이나 증권형 토큰(주식이나 채권과 유사한 암호자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베트남 내에서는 이미 상당한 규모로 가상화폐 시장이 성장해 있다. 정부 산하 ‘베트남투자리뷰’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에서는 약 1,700만 명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시장 가치는 약 1,000억 달러(한화 약 139조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빠르게 커진 디지털 자산 시장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미뤄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가된 거래소 이외의 플랫폼을 통한 가상화폐 거래는 불법으로 간주할 방침이나, 아직 구체적인 처벌 기준은 마련되지 않았다. 한편, 베트남 국회는 이미 2023년 디지털 자산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으며,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국가 11대 핵심 기술에 포함시키는 등 정책적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 업체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한국의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베트남 국영 밀리터리은행(MB은행)과 손잡고 현지 거래소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나무는 파트너십을 통해 정책 자문과 투자자 보호 시스템 구축에도 협조할 계획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베트남이 동남아에서 가장 제도화된 디지털 자산 시장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높이며, 글로벌 블록체인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도 정비 과정에서 나타날 시행착오와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이 향후 시장의 성패를 가늠하는 핵심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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