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XRP)·도지코인(DOGE) ETF 엇갈린 운명…SEC 승인 지연 vs 법적 우회

| 서지우 기자

리플(XRP)과 도지코인(DOGE)에 기반한 상장지수펀드(ETF)의 출범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심사 지연으로 제동이 걸렸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이 이미 ETF 시장에서 안착한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이번 사례는 디지털 자산 간 규제 격차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SEC는 지난 10일 프랭클린 템플턴이 신청한 리플 ETF의 최종 심사 기한을 9월 15일에서 11월 14일로 연장했다. 이미 3월 첫 제출 이후 두 번째 연기다. SEC는 관련 의견 검토와 잠재 리스크 분석을 위해 추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펀드는 15개 이상의 XRP ETF 중 하나로, 아직 어느 것도 승인받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예측 플랫폼 폴리마켓(Polymarket)에서는 연내 승인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어,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여전한 모습이다.

한편, 도지코인의 경우 ETF 출범 일정이 더 가까워 보인다. 블룸버그 ETF 애널리스트 에릭 발치우나스는 오는 18일 전후로 렉스-오스프리의 도지 ETF(DOJE)가 출시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예정됐던 12일 론칭에서 약 일주일가량 지연된 일정이다. 시장에선 대형 투자자들이 도지코인을 대량 매집하며 ETF 출시를 앞두고 있는 분위기다. 온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샌티먼트에 따르면, 최근 100만~1,000만 DOGE를 보유한 지갑 수는 4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 ETF 간의 차이는 단순한 일정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 규제 경로도 판이하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ETF는 ‘1933 증권법’ 하에서 그랜터 트러스트(grantor trust) 형태로, 물리적 자산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전통적인 암호화폐 ETF 구조지만, 복잡한 심사 절차와 공개 의견 수렴 등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반면 도지코인 기반 ETF는 ‘1940 투자회사법’에 따른 등록투자회사(RIC) 구조를 채택했다. 이 구조는 케이맨제도에 설립된 자회사를 통해 현물시장에 노출되며, 파생상품 보유도 가능하게 해 규제를 피하고 신속한 출범이 가능한 점이 특징이다. ETF 전문가 제임스 세이파트는 “DOGE ETF는 법적 우회로를 통해 SEC 프로세스를 간소화하는 새로운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규제 차익(regulatory arbitrage)'을 활용한 구조 덕분에, 농담 삼아 만들어진 도지코인이 리플보다 먼저 ETF로 출시될 수 있다는 현실은 투자자뿐 아니라 규제 당국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리플은 오랜 법적 분쟁과 탄탄한 생태계를 갖췄지만 새로운 제도적 실험 앞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있다.

이번 사례는 암호화폐 ETF 시장이 단순히 자산의 규모나 인지도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구조적 설계와 법적 전략이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줬다. 산업 전반에 걸쳐 규제 체계의 명확성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