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거래되면서 디지털 자산 시장이 제도권 금융과 본격적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법적 제약으로 인해 암호화폐를 공식 투자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제도권 편입을 위한 대안 모색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 11종을 정식 승인했다. 이로 인해 블랙록, 피델리티, 인베스코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출시했고, 기관투자가 자금도 급속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ETF 거래 첫날만 해도 전체 거래 규모가 6조 원을 넘었으며, 1분기 순유입 자금은 약 120억 달러에 달하는 등 시장 파급력이 컸다. 이는 암호화폐가 더 이상 변두리 자산이 아니라 제도권 금융 안에 들어온 것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미국이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중심지로 부상한 배경에는 세 가지 제도적 축이 자리잡고 있다. ETF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기반, 기관 수준의 자산 수탁 서비스(커스터디), 그리고 뉴욕증권거래소나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같은 성숙한 거래 인프라가 그것이다. 이 세 요소가 서로 긴밀하게 작동하며 시장의 신뢰와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아직 가상자산을 자본시장법상 투자 대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어 ETF 설정은 물론, 제도권 내 거래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로서는 개인이 직접 코인거래소를 통해 매매하는 방식 외에는 제약이 많고, 금융당국조차 해외 ETF를 국내에서 중개하는 행위에 대해 불법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적 흐름과 국내 투자자들의 수요 확대에 따라 정부와 국회도 점차 법 개정과 제도 개선 논의에 착수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모델을 그대로 차용하는 데는 리스크가 있다.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비트코인 외의 알트코인 중심, 특히 이른바 ‘김치코인’으로 불리는 투기적 코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격 변동성과 시장 투명성 측면에서 불안 요소가 적지 않다. 최근 대형 알트코인 위믹스의 디폴트 사례처럼, 발행 공시 부실, 해킹, 시세조작 등 구조적인 문제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STO(증권형 토큰 발행) 기반 투자 모델이다. STO는 부동산, 지식재산권, 온실가스 배출권, 인프라 시설 같은 실물자산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토큰 형태로 발행하고, 이를 투자상품으로 유동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TO는 자산의 실체가 분명하고, 법적 보호와 기록 투명성 측면에서 강점을 갖는다. 특히 K-콘텐츠 IP, 지역 부동산 개발, 관광 및 문화 자산 등을 토큰화하면 지방 자본 분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향후 한국이 디지털 자산 산업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수익을 좇는 알트코인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ETF, 커스터디, STO 같은 제도 기반 자산을 중심으로 금융·문화·지역경제가 연계된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은행권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디지털자산협회 설립,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범사업, 정부와 민간이 공동 참여하는 투자펀드 조성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정책과 기술, 금융과 문화가 융합된 ‘한국형 디지털 자산 전략’으로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시장의 추종자가 아닌 선도자로 나서기 위해서라도, 독립적이고 안정적인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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