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법무부가 역대 최대 규모인 약 150억 달러(약 21조 6,000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압수했다. 압수 대상은 캄보디아에서 '피그 부처링(pig butchering)' 사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계 영국 국적자 천즈(Chen Zhi, 일명 빈센트)다. 천즈는 캄보디아 대형 재벌 프린스홀딩그룹(Prince Holding Group)의 창립자이며, 해당 그룹을 통해 강제노역 기반의 사기 산업을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그 부처링은 SNS나 데이팅 앱을 통해 시간을 들여 피해자와 신뢰를 쌓은 뒤, 가짜 암호화폐나 금융 투자 기회로 유인해 자금을 갈취하는 수법이다. 특히 이번 범죄는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조성된 강제노역형 사기 단지를 기반으로 운영됐다. 피해자들은 취업을 미끼로 유인되어 여권을 빼앗긴 뒤, 폭력과 협박 아래 가짜 콜센터 운영, 가상투자 사이트 관리 등에 동원됐다.
법무부는 이날 천즈를 전신사기와 자금세탁 공모 혐의로 기소했다. 동시에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천즈 및 프린스홀딩그룹과 연계된 단체와 개인 146명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에 따라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은 동결되고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전면 차단된다. 미국 금융범죄단속국(FinCEN) 역시 사기 조직의 자금세탁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후이원그룹(Huione Group)에 대한 거래 차단 조치를 시행했다.
이번 비트코인 압수는 수년에 걸친 국제 공조 수사 끝에 이뤄졌다. 자금 흐름은 복잡한 페이퍼컴퍼니와 카지노, 암호화폐 지갑을 통해 여러 단계로 세탁됐으며, 믹서와 탈중앙화 거래소를 거쳐 소유 추적이 어렵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수사당국은 끝내 이 자금들이 프린스 그룹이 관리하는 지갑으로 통합된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수사 당국에 따르면, 천즈 일당은 수천 명의 피해자를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로 유인한 뒤 노동력으로 착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상적 고용 조건과 폭력을 동반한 감금 형태의 노동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으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들이 조작한 시스템에 속아 막대한 금액을 날렸다.
한편 올 초 발생한 태국-캄보디아 접경지역 긴장 고조 역시 이 같은 사기 산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태국 정부가 캄보디아 내 불법 사기 단지 단속을 공언한 바 있으며, 이로 인해 양국 간 군사 충돌 위기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비즈니스앤휴먼라이츠리소스센터가 지난 5월 발표한 보고서는 캄보디아의 사기 산업 매출을 연간 125억~190억 달러(약 18조~27조 원) 규모로 추정하며, 이는 캄보디아 국내총생산(GDP)의 6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미 현지에서는 이러한 사기 산업이 국가 차원의 보안 위협이 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파멜라 본디 법무장관과 토드 블랑쉬 부장관은 "강제노동과 디지털 금융사기에 기반한 범죄 제국을 해체한 매우 중대한 조치"라며 "피해자 보호와 자산 회수, 범죄 책임자 단죄를 위해 미국은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범죄 단속을 넘어, 국제사회가 주목할 만한 글로벌 범죄 대응 모델 사례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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