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자금 추적 막는다… '4~5단계'서 등장하는 프라이버시 코인의 정체

| 서지우 기자

해킹 뒤 ‘사라진 자금’, 프라이버시 코인은 어디에 쓰일까

암호화폐 해킹 사건이 발생한 직후, 해커들이 도피 경로로 프라이버시 코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자주 포착된다. 이런 흐름은 모네로(XMR), 지캐시(ZEC) 같은 익명성을 강조한 코인들이 ‘해커들의 선택지’라는 인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 프라이버시 코인은 단독 도구라기보다는 훨씬 정교한 자금 세탁 절차의 일환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금 세탁의 ‘4단계’ 중 후반부에 등장하는 프라이버시 코인

일반적으로 해킹 자금은 여러 단계를 거쳐 세탁된다. 초기 단계에서는 다수의 피해자 주소에서 자금을 모아 ‘통합’하고, 이후 여러 지갑을 거쳐 복잡하게 흩뜨리는 ‘혼탁화’ 과정을 진행한다. 다음은 서로 다른 블록체인 간에 자산을 옮기는 ‘체인 이동(chain hopping)’이 뒤따른다. 이 일련의 단계를 거친 후 일부 자금이 프라이버시 코인이나 익명 프로토콜로 전환된다. 마지막으로, 피투피어(P2P) 또는 장외 시장(OTC)에서 현금화가 이뤄진다.

즉, 프라이버시 코인은 전체 절차 중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단계에서 등장하며, 이미 세탁이 상당 부분 진행된 자금의 ‘가시성 추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왜 해커들은 해킹 직후 프라이버시 코인을 쓸까

익명 코인의 가장 큰 장점은 초기 몇 일간의 ‘고위험 구간’을 커버해준다는 점이다. 대부분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이 공개되지만, 프라이버시 코인은 송금자·수신자·금액 정보를 숨긴다. 해킹 직후 추적을 피하기 위해 교차체인, 믹서, 다양한 지갑 등을 활용하다가 마지막에 프라이버시 코인으로 옮기면 전체 흐름을 따라가기 어렵다.

또한 OTC나 P2P 거래를 통해 현금화를 시도해야 하는 해커 입장에선, 상대방에게 자금 출처에 대한 힌트를 덜 주는 프라이버시 코인이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몇 초기 랜섬웨어 그룹은 비트코인(BTC)으로 몸값을 요구하다가, 거래소들이 공동으로 ‘주소 블랙리스트’ 감시에 나서자 프라이버시 코인만 요구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믹서 단속이 프라이버시 코인 수요로 이어진다

법 집행 기관이 크립토 믹서나 고위험 브리지를 단속하면, 해커들은 대체 수단을 찾는다. 그 대표적인 수혜자가 프라이버시 코인이다. 제3자 서비스를 통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흔적을 감추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자금 세탁 네트워크를 탈중앙화하고 경로를 다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프라이버시 코인의 한계… 현금화는 여전히 BTC·이더·스테이블

하지만 프라이버시 코인이 전부는 아니다. 대규모 해킹일수록 결국엔 비트코인, 이더리움(ETH), 스테이블코인처럼 ‘유동성이 높은 자산’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크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모네로나 지캐시는 거래량이 적고, 대부분 주요 거래소에 상장돼 있지 않으며, 규제 감시도 강해 한꺼번에 많은 금액을 현금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프라이버시 코인은 ‘잠깐’ 쓰이고, 마지막 현금화 단계에서는 다시 기존 메이저 코인으로 갈아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세탁 패턴 분석… ‘혼합 전략’이 늘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반복 패턴을 주목한다. 다수 지갑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집중화-분산화 반복’, 여러 체인을 오가며 이어지지 않는 거래 연쇄 만들기, 긴 대기 시간 뒤 거래 실행, 제도권 밖 브로커 활용 등이다. 특히 프라이버시 코인은 전체 자금 흐름의 중간에 ‘은신처’처럼 삽입되는 사례가 많다.

이런 행동은 규제망을 뚫기 위한 ‘하이브리드 전략’이다. 프라이버시만 강조하거나, 유동성만 중요시하지 않고 양쪽을 전략적으로 섞는다.

익명성 속에서도 단서는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 코인이 범죄를 완벽히 숨겨주는 것은 아니다. 실제 수사에서는 두 가지 접점을 공략한다. ‘출입구’로 쓰인 거래소와 브로커는 KYC(신원확인)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하드웨어 장치, 리얼 세계의 중개인, 은행계좌를 통해 실제 인물과 연결되기도 한다.

블록체인 추적 전문 기업들도 프라이버시 코인 자체보다는, 그 이전이나 이후 거래에서 단서를 찾는 전략을 활용 중이다. 데이터가 완전히 차단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 기술은 무조건 악인가? 그건 아니다

익명성 기술은 해커만을 위한 도구는 아니다. 경쟁사로부터 자금 흐름을 보호하려는 기업, 정부 검열이 심한 국가에서 프라이버시가 필요한 시민, 자산 노출로 인한 납치나 범죄 위험을 줄이고 싶은 사용자 등 다양한 정당한 수요가 존재한다.

규제가 필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불법적 활용’이다. 실명 거래소, 수상한 패턴 분석, 블랙리스트 주소 공유가 이뤄지면 이미 상당수 불법 사례를 추적할 수 있다.

규제당국에 주어진 오래된 과제, ‘균형’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 정부는 암호화폐 규제와 금융 범죄 단속에 강경 노선을 취해왔다. 지금도 거래소와 정부는 자금 세탁 방지 시스템 강화를 요구받는 중이다. 코인 간 이동이 너무 빠르고 다양한 만큼, ‘규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크다. 해커들이 믹서를 회피하면 프라이버시 코인으로, 프라이버시 코인이 단속되면 또 다른 수단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특성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거래소와 정책 당국이 ‘지나친 통제’로 일반 유저의 합법적 프라이버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 동시에 범죄자들이 편하게 도피 경로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감시와 수사 기법도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프라이버시 코인의 등장은 위험이자, 동시에 디지털 경제 시대의 자유와 보안에 대한 숙제를 던지고 있다.


💡 “프라이버시 코인의 함수, 기술의 선악을 배우는 곳”

모네로 같은 프라이버시 코인은 해커만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특정 기업의 경쟁 정보 보호, 억압 국가에서의 자유 수단, 고액 자산가의 납치 방지 등 합법적 수요 또한 엄연히 존재합니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사용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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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금은 왜 프라이버시 코인으로 숨고, 다시 비트코인으로 나오는가?"} 범죄자의 시선이 아닌 투자자의 관점에서 그 '이유'와 '한계'를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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