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명 불법체류자, 테더로 월급 받는다…커지는 그림자 경제

| 한재호 기자

국내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코인 월급’이 조용히 퍼지고 있다. 특히 공식 금융 접근이 어려운 불법체류자들 사이에서 달러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를 급여로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은행 계좌 없어도, 수수료도 적고, 송금도 빠르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보이지 않는 급여’…제도 밖으로 밀려난 40만 명

11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체류 외국인은 265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불법체류자는 4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은행 계좌 개설이 불가능하거나, 신분 노출 우려로 금융 거래를 기피한다. 대신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이 이들의 ‘비공식 통화’가 되고 있다.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정부나 금융 시스템의 감시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노동시장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 급여’의 규모가 커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코인이 ‘급여 통장’…송금 수수료 없는 삶

개발도상국 출신이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스테이블 코인은 현실적인 대안이다. 자국 통화의 가치가 불안정하거나 은행 인프라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테더는 스마트폰 지갑만 있으면 수 분 안에 고국으로 송금할 수 있다. 수수료도 수백 원에서 수천 원 수준으로, 전통 은행 대비 최대 10배 이상 저렴하다.

지난달 열린 ‘파리 블록체인 위크 2025’에서도 관련 사례가 소개됐다. 홍콩의 동남아 출신 가사도우미들이 스테이블 코인으로 송금하며 고액 수수료를 절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제도 밖 급여, 법망의 사각지대

문제는 이러한 지급 방식이 법적,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 코인 거래는 되돌릴 수 없어, 사기를 당하거나 주소를 잘못 입력하면 사실상 보상받기 어렵다. 중개자가 없는 블록체인 시스템의 한계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금품'으로 정의되지만, 코인 급여는 법적 해석이 모호하다. 체불이나 착취 발생 시 정부가 이를 인지하거나 규제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피해를 넘어, 전체 노동 시장의 신뢰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또한 스테이블 코인 급여는 외환시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실상 달러에 해당하는 테더가 대량으로 국외로 송금되면, 외화 유출 효과와 같은 경제적 파장이 발생할 수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규모가 커질 경우 국내 외환 수급과 환율 안정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4년 만에 10배 성장…통제 불가능한 ‘디지털 경제’

스테이블 코인의 세계적 거래 규모는 2020년 5607억 달러에서 지난해 5조6600억 달러(약 8000조 원)로 4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송금만이 아니라 입출금, 결제, 이체 등 모든 거래를 포함한다.

블록체인은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된 이들에게 새로운 출구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문 너머의 세계는 정부의 감시나 제도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다.

‘테더 월급’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를 넘어, 제도권 밖의 또 다른 경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속에서 한국의 노동시장과 외환시장도 조용히 변하고 있다. 이제는 이 변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