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vs 파월, 25억 달러 연준 수리비 두고 정면충돌…해임 신호탄?

| 김민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준 본청 리노베이션 비용을 둘러싼 공방이다. 백악관은 연준의 건물 보수사업이 과도하게 사치스럽다고 비판하며, 트럼프가 파월 의장을 해임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연준 측은 1930년대에 완공된 마블 건물의 노후화가 심각해 리모델링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석면 오염, 노후된 배관과 환풍 시스템, 낡은 구조물 등 안전상 문제도 수두룩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공사비가 25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에 달하는 데다 원래 예산보다 약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나 증가했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진짜 쟁점은 금리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이 자신의 수차례 금리 인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꾸준히 불만스럽게 언급해 왔다. 연준 의장은 대통령이 임의로 해임할 수는 없지만, '사유 있는 해임(for cause)'이라는 모호한 법적 기준 하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가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정치적 수단으로 보기에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포토맥 리버 캐피탈의 공동 창립자인 마크 스핀델은 "이 문제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고 지적하며, 만약 파월이 해임된다면 연준의 독립성과 글로벌 달러 체계 신뢰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이체방크의 전략가 조지 사라벨로스 역시 "연준 의장의 해임은 수개월 내 가장 저평가된 위험 변수 중 하나"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후임 인선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파월의 임기가 2026년 5월 종료되지만, 트럼프는 해임 또는 조기 후임 지명 카드로 차기 통화정책 방향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워싱턴 정가는 전연준 이사였던 케빈 워시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인 케빈 해셋을 유력한 후임 후보군으로 보고 있다. 해셋은 최근 인터뷰에서 "파월은 해임될 수 있다"며 대통령의 권한을 정면으로 옹호했다.

백악관은 연준을 압박하는 또 다른 수단으로 예산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 예산국장 러셀 보트는 파월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과도하고 사치스러운 본청 개보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고 밝히며, 25억 달러 규모의 공사비 중 추가 비용이 7억 달러(약 1조 100억 원)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압박에 대해 연준은 원칙에 입각한 대응에 나섰다. 아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례적으로 연준 감찰관에게 감사를 요청했고, 공식 홈페이지에는 상세한 FAQ까지 게시해 공사 명분을 적극 소명하고 있다. 연준은 이번 리노베이션이 단순한 미관 개선이 아닌, 1930년대부터 사용된 두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 강화와 공간 통합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또한 별도의 VIP 식당이나 전용 엘리베이터 등 특혜성 시설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 참여자 다수는 현재까지는 파월 해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BMO 캐피털 마켓의 이안 링겐 금리 전략 총괄은 일반적인 정치 환경에서는 건물 수리비가 해임 사유로 연결되기 어렵다고 진단했지만, "요즘 워싱턴은 전혀 평범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정치와 통화정책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오늘날, 연준의 리노베이션 이슈는 단순한 건축 논란을 넘어 미국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신뢰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수령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