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동차와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늘면서, 산업 전반에 회복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4년 만에 최대 증가율로, 전기차와 인공지능 등 미래 기술 중심의 투자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가데이터처와 국가통계포털(KOSIS)이 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전(全) 산업 설비투자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 상승했다. 이는 2021년 11.3% 상승 이후 동기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업종별로는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가 뚜렷한 투자 상승세를 주도했다. 자동차 산업에서는 친환경차 전환 및 자율주행 기술 강화 등 미래형 생산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설비투자가 전년 동기 대비 15.6% 증가했다. 이는 2000년 이후 최고치다.
반도체 부문 역시 투자 확대가 두드러졌다. 특히 반도체 제조 장비 투자가 15.7% 늘어났으며, 이는 2021년 슈퍼 사이클(초호황기) 수준 이후 최대 폭의 증가다.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과 메모리 반도체 재고 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 것이 주요 배경으로 분석된다. 9월 한 달 동안만 봐도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12.7%나 올랐으며, 이 중 반도체 제조 장비 투자는 28% 증가해 상승세를 견인했다.
소비 측면에서도 개선 흐름이 뚜렷하다. 올해 3분기 국내 소매판매는 계절조정 기준으로 1.5% 증가하며, 2021년 3분기 이후 가장 크게 늘었다. 특히 서비스업 생산 중 도소매업은 3분기에만 전 분기 대비 4.5% 상승해, 통계가 작성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정부가 7월부터 시행한 소비쿠폰 등의 정책 효과와 맞물려 내수 진작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체 산업 생산은 여전히 더딘 회복세를 보인다. 1∼9월 전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0.8%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이는 202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건설 분야는 더욱 부진하다. 같은 기간 건설기성 지표는 17% 감소해 통계 작성 이래 최대 감소율을 기록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와 민간분양 위축 등이 겹치며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미국이 추진 중인 연간 200억 달러(약 28조 6천억 원) 규모의 투자 제한 정책은 국내 투자 흐름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강대학교 허정 교수는 “높아진 대미 관세와 함께 대규모 해외 투자가 불가피해지면서, 국내에서의 신규 투자는 위축될 수 있다”며, “이는 중장기적으로 한국 산업 성장 전략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국내 경기 회복의 두 축인 제조업과 소비가 계속해서 동반 개선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건설 경기의 회복 지연과 대외 정책 리스크는 여전히 잠재적 불안요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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