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전 세계 게임 불황 속 '남미 게임 허브'로 부상

| 김민준 기자

브라질이 세계 게임 산업의 침체 속에서도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파울루에서 열린 '게임스컴 라탐(Gamescom Latam)'은 13만명에 육박하는 참관객을 끌어들이며 남미 최대 규모의 게임쇼로 자리잡았다. 팬층의 폭발적인 성장과 정부의 제도적 지원, 그리고 외부 개발(External Development)에 특화된 인력 기반이 브라질 게임 생태계의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게임스컴 라탐은 북미와 유럽에서 감원과 프로젝트 축소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글로벌 게임업계와는 대비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게임 산업 시장조사기관 뉴주(Newzoo)에 따르면 2024년 브라질 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6.2%에 달해 미국의 0.1%를 큰 폭으로 앞질렀다. 특히 게임 개발 일자리와 콘텐츠 수출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새로운 입법 조치가 주요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브라질 국회는 게임 산업을 독립된 산업군으로 분류하고, 개발자와 기획자 등 직군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세제 혜택의 토대를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의 빠른 적응력과 팬층의 열정이 게임 시장 확대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브라게임스(Abragames)와 브라질게임스 프로젝트의 주요 관계자들은 “브라질은 항상 언더독의 위치였다”며 “도전적 환경에 익숙한 만큼 글로벌 게임 산업의 복잡한 문제도 오히려 성장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브라질 게임 산업이 본격적인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 유입과 자생적 지식재산권(IP)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약 1200개의 브라질 게임 스튜디오 중 대다수는 외주 수주 방식으로 사업을 유지하며 자체 퍼블리싱 역량은 제한적이다. 이런 가운데 '소울스톤 서바이버즈', '카켈레 온라인', '던전즈 앤 드라이버즈' 같은 소규모 개발사의 독립 프로젝트는 브라질 게임 산업의 자립 가능성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실제로 브라질 일부 중소 게임사들은 외주 수익이나 로컬 투자자금으로 자체 IP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상업적 성공 확률이 낮고, 외부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중고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외국 자본 유입에 부과되는 20%의 세금 장벽도 한몫하고 있다. 일부 스튜디오는 해외 현지 법인을 설립하거나 외국 퍼블리셔와 협업을 통해 이 문제를 우회하고 있다.

투자 환경도 녹록지 않다. 2025년 1분기 게임 벤처캐피탈의 남미 투자액은 0달러를 기록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북미는 같은 기간 약 1억 9,800만 달러(약 2,851억 원)를 조달했다. 그러나 관련 전문가들은 브라질의 자생적 성장 가능성에 여전히 낙관적이다. 뉴주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연평균 게임 산업 성장률은 6.2%로, 중동·북아프리카(7.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향후 과제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히트 IP의 탄생이 꼽힌다. 스타 개발사 육성과 국제 유통망 확보를 위한 퍼블리셔와의 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제로 에픽게임즈는 2023년 브라질 개발사 아퀴리스를 인수해 ‘에픽게임즈 브라질’로 출범시키며 지역 거점을 확보했다.

또 다른 중요한 과제는 브라질 국내의 유망 인재를 유출하지 않고 자국 산업 내에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브라질 게임산업협회는 외주 개발 인력 육성과 대학 내 커리큘럼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매년 개최되는 게임스컴 라탐은 브라질뿐 아니라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남미 전역의 게임 기업들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자처하며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게임 산업의 주요 이정표가 되고 있는 ‘GTA6’의 2026년 출시 연기와 같은 변수는 오히려 중소 개발사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시장의 공백을 활용해 틈새 수요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의 기업과 개발자들은 이제 '트리플A'가 아닌 '트리플I(독립 대작)'를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제작비 상승과 퍼블리셔의 보수적 투자방식에 따라 시장 전체가 보다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제작 모델로 전환되고 있다는 흐름과도 일치한다. 10년 전만 해도 게임 산업과 거리가 멀었던 나라 브라질이 이제는 남미 전체 게임 생태계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