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이끈 벤처 붐…10년간 투자금 2배↑, 美 다시 주도권

| 김민준 기자

지난 10년간 벤처 투자금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연간 약 430조 원(약 3,0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순한 성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인공지능(AI)의 급부상이 이 같은 성장세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향후 10년 동안 또 한 번의 도약이 가능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크런치베이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번 벤처 투자 확대는 세 가지 결정적인 흐름에 기인한다. 첫째, 스타트업 투자가 실리콘밸리를 넘어 세계 전역으로 확산됐고, 둘째, 1억 달러 이상 규모인 ‘메가 라운드’ 투자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다. 셋째, AI 관련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이 단연 눈에 띄었다. 특히 지난해 AI 기업에만 약 144조 원(1000억 달러) 이상이 쏟아졌으며, 이는 전체 글로벌 투자금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AI 중심의 대규모 투자는 오픈AI(OpenAI), 앤스로픽(Anthropic) 등 미국 내 주요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이뤄지며, 미국은 지난해 전 세계 벤처 투자금의 56%를 다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한동안 비미국 지역이 주도하던 흐름이 역전된 결과로, AI가 미국 중심의 기술 주도권을 재강화한 배경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메가 라운드 증가다. 2016년부터 매년 전체 투자금의 40% 이상이 1억 달러 이상 투자에 집중된 데 이어, 2024년에도 절반 이상이 이 같은 대형 계약으로 이뤄졌다. 반면 5,000만 달러 이하 투자 비중은 지속 감소했고, 2024년 기준 전체 투자금 중 38%만이 이 규모 이하 스타트업에 투입됐다.

배터리 벤처스의 제너럴 파트너 다메시 탁커(Dharmesh Thakker)는 “AI 기술로 인해 기업은 훨씬 빠른 속도로 커질 수 있게 됐다”며 “성공하는 기업은 기존 상장 기업 규모인 20억~100억 달러 선이 아니라 1,000억~5,000억 달러 대로 진입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편, 2021년은 벤처 업계에서 전례 없는 투자 급증이 일어난 해로, 전체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두 배 늘어난 ‘이례적’ 해로 평가된다. 이는 2022년 1분기까지 지속되었으나, 이후 기술주 급락과 신규 상장 정체로 조정을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간 전체 투자 규모는 두 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나스닥과 S&P500 지수 등의 상승세와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나스닥은 닷컴 버블 이전 수준을 회복한 뒤 지속 상승하며 2024년 말 기준 19,310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기술 중심 산업이 거둔 성과를 수치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초기 투자를 포함한 중간 규모(5백만~5천만 달러) 투자도 여전히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이후 이 범주의 투자는 전체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스타트업 성장의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자금줄이 되고 있다.

AI 분야는 이제 막 확장 궤도에 진입했다. AI 인프라, 도구, 응용 서비스 등 다양한 형태의 민간 AI 기업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 10~20년 이상 지속될 전망이다. 산업별로는 헬스케어, 제조업, 로보틱스, 국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AI의 파급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탁커는 AI의 확산으로 소프트웨어와 기술 시장의 규모 자체가 GDP 성장률을 넘어 2~3배 성장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면서, 경제적 가치 창출의 중심축이 소프트웨어로 전환될 가능성도 전망했다.

AI라는 기술 혁신은 단지 한 분기나 일시적 유행이 아닌 구조적 전환이다. 전 세계 벤처 자본은 앞으로 이 구조적 변화에 베팅할 것이며, 지금보다 더 큰 규모의 투자와 더 대담한 기술 혁신에 기회를 걸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다음 10년, 이 흐름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VC 생태계의 미래를 가늠할 중대한 시점에 와 있다.